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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공사재개’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활짝 웃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혜롭고 현명한 답” “숙의민주주의의 모범” “통합과 상생의 정신”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러나 닷새째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기원 108배를 마치고 오신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은 울고 계셨다. 볕에 잔뜩 그을린 피곤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져갔다.

공론화위원회의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밀양 주민들의 눈물이 떠올랐고, 깨달았다. 보고서에 ‘숫자’는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시민참여단에 제공된, 객관성 담보를 위해 최대한 수치화된 자료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핵발전소로 삶이 해체된 사람들, 송전탑으로 삶이 뽑혀버린 사람들, 현장에서 피폭노동을 감내하는 하청업체의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은 숙의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력수급 전망과 전기요금 인상분은 열띤 논의 대상이 되지만, 핵발전소의 전기는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아픈 진실은 매몰비용이란 거대한 숫자 앞에서 쉽게 매몰된다. 일단 짓기 시작했으니 계속 지어야 한다는 완고한 경제 논리 앞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고통을 감내해온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에 대한 공감은 감상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효율과 경쟁의 시대, 진실과 공감을 위한 자리는 줄어들고, 구석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경제를 앞세운 개발 논리 앞에선 자연도 온전하기 힘들다. 지난 6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문화재위원회가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문화재현상변경신청을 부결 처리한 것이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문화 향유권’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지난 10월25일, 문화재위원회는 문화 향유권을 포함해 재심의를 했고, 다시 한 번 부결로 처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문화재청이 행정심판의 기속력을 들먹이며 조건부 허가 처분을 하겠다고 나섰다. 재작년에는 국립공원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국립공원위원회의 거수기 판결을 통해 설악산 개발에 앞장서더니, 이번에는 천연보호구역을 보존해야 할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의 부결 판결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을 다시 개발의 늪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문화재청의 입장에는 규정은 있지만, 문화재청에 걸맞은 아름다움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공감이 없다. 정당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절차적 정당성은 법대로 했다고 무조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상식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만 정당성이 확보된다. 행정심판의 기속력을 들먹일수록, 문화재위원회가 안건을 다시 심의하도록 한 문화재청의 의도는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법(法)의 해석과 적용은 물(水) 흐르듯(去)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재작년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 지난번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결과 이어지는 문화재청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보이지 않는, 아니 차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청산에 여념이 없는 ‘적폐’가 여기서 다시 쌓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천주교 사제인 문정현 신부님은 요즘 미 대사관 건너편 광화문광장에서 하루 종일 온몸으로 나무판에 평화를 새기신다.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온몸으로 바치신다. 신부님이 새기고 계신 나무판의 글자에는 ‘사람’이 들어 있다. 국가 안보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짙은 공감이 배어 있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힘없는 사람과 말 못하는 자연을 보듬는 것은 결국 힘센 국가가 아니라 함께 처지를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밀양과 설악산과 광화문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가장 불행한 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조그만 나라 부탄이 새삼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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