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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지난 주말에 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와 키우고 있다. 작고 앙증맞아 노리개 삼아 안고 뒹굴 수 있는 애완견이 아니다. 어미는 진돗개 잡종이고 아비는 사냥감을 잘 회수한다는 리트리버다. 덩치로 보나 넘치는 기운을 해소하려는 활력으로 보나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녀석이다. 또한 평소에 공동주택에서 들리는 과도한 개 짖음이 이웃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을 경험하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텃밭에서 키울 요량으로 데리고 왔다. 종의 경계를 넘어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요즘의 개를, 주마다 두세 번 가는 정성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 통할지 문제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굳이 그 개를 키우려는 까닭이 있다. 어미는 ‘삼발이’라는 이름으로 짐작하겠지만 사고로 앞발을 하나 잃어 다리가 셋뿐이다. 만삭이 되어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출산을 준비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더하여 2월 기후로 가장 추웠다는 지난 입춘 무렵에 새끼들을 낳고, 혹시 그 어린것들이 얼어 죽을까 염려해 사흘 동안 식음까지 전폐하며 꼼짝 않고 새끼들을 품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미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울의 아파트에서 연천의 변방으로 밀려나 한동안 우울해하다가 ‘삼발이’를 만나 활기를 되찾은 아비 리트리버의 귀공자다운 품격을 물려받았을 강아지와 인연을 맺고 싶었다.
그 강아지와의 만남은 더 큰 인연의 곁가지일 뿐이다. 사실인즉슨 사경을 헤맨 ‘삼발이’를 거두어 윤기가 자르르하게 키워 어엿한 어미노릇을 하게 한 주인을 십수년 동안 만나며 신뢰하게 되어 그분 말만을 믿고 키우게 된 것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흐르는 옛 고구려의 당포성이 있는 지점에서, 그분은 순댓국집을 운영하며 농사도 짓고 학업도 병행한다.
아침에 준비한 그날 분량이 다 팔리면 즉시 문을 닫고 농부로 변신해 논밭으로 향하는 것이 그분의 일상이다. 도축장에서 직접 고른 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기른 무·배추로 김치를 담그기에, 그분의 가게에서는 속아서 찜찜한 것을 먹을 일이 없다. 그런 사람이기에 지난번 구제역이 창궐하던 시기엔 석 달 동안이나 문을 닫고 장기휴업을 해도 손님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세 겹으로 아름답게 얽힌 인연의 소산인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직까지 나는 강아지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에 익숙하지 못하고, 수시로 제 몸을 발로 긁어대는 걸로 보아 털에 벼룩이 있을 것 같아 선뜻 껴안지도 못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강아지와 놀 때는 장갑을 끼는 것이다.
울산 태화시장에서 마를 고르고 있는 박근혜 선대위원장 I 출처:경향DB
참으로 한심한 요즘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손에 붕대를 감고 건성으로 악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있어 야릇한 동병상련을 느꼈다. 자기의 이름을 걸고 지역구에서 후회 없는 한판을 벌여야 할 건장한 남성 후보자들이 박근혜라는 얼굴을 내세우고 자기들은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니 연약한 여자의 손이 남아나지 않는 것 아닌가? 박근혜도 그렇다. 한번 도와주기로 작심했으면 붕대를 풀고 손이 으스러지고 팔이 찌릿찌릿하도록 진정으로 악수하고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순간이나마 그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대권가도를 탄탄히 다지는 전초작업이기도 할 테니까.
박근혜와 그녀를 따르는 무리의 가장행렬을 보면서 개운치 않았던 까닭은, 손에 두른 붕대가 상징하는 막의 의미 때문이다. 장갑은 단순히 자신의 손만을 보호하지 않고 타인의 땀과 체취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상대의 실체를 오롯이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기가 아쉬워 손을 내밀 때도 그렇게 오만한데 최고의 권력을 쟁취하면 어떨까. 그녀의 악수 퍼포먼스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읽는다. 박근혜의 손에 감은 붕대의 불통이 이명박 대통령의 철판을 깐 불통을 닮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투표를 통한 빨간 동그라미의 혁명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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