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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 역대 최다의 압도적인 표차였다. 1700만 촛불시민들이 만들어낸 촛불대선다웠다. ‘이게 나라냐.’ 봇물처럼 터졌던 광장의 분노는 70년의 적폐 청산과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정의로운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말했다. 적폐 청산과 개혁이 된 우리나라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적폐 청산과 개혁에 저항하는 집단은 여전히 강고하다. 그래서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2013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 외부의 첫 공식 방문으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 섬의 난민들을 찾아 위로하였다. 2014년의 한국 방문, 교종은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하였다. 귀국길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던 교종은 여전히 유가족과 함께였다. 교종의 행보는 가장 약한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교종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이 모든 이를 위하는 길임을 보여주었다.
19대 대선 투표일 전날인 8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펼쳐진 서울 광화문광장에 지지자들이 모여 휴대폰 불빛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권호욱 기자
성주 소성리, 160여명의 주민이 평화롭게 참외 농사를 지으며 살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민들, 원불교, 연대 시민들이 불법적인 사드 반입을 힘겹게 막고 있는 갈등과 분쟁의 현장으로 변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성주를 외면해선 안된다. 소성리에 가서, 주민들의 말을 귀여겨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두 가지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첫째, 내용의 타당성. 우리나라에서 사드의 필요성과 효용, 사드가 동북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드 배치 주장을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절차의 타당성. 지금까지 한·미 양국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그 절차가 사드라는 무기체계와 미군기지 공여에 적절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청와대 안보실장의 역할, 군사 작전하듯 자행한 사드의 기습 반입, 환경영향평가 문제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의 최선이 여기서 그칠 순 없다. 국익과 안보의 이름으로 그냥 ‘그래도 되는 곳’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없다는 엄숙한 선언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정부를 대신하여, 지금껏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모진 아픔과 설움, 억울함과 분노에 진정한 사과와 위로로 답해야 한다.
그럴 때,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온갖 냉대를 길거리에서 견뎌야 했던 세월호 유가족, 특히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을 소성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한·일 정부로부터 모욕을 당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핵발전소와 송전탑과 해군기지로 삶이 망가진 월성과 밀양·청도와 강정 주민들을 만날 것이다. 아무도 그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백남기 농민의 유족, 누구보다 열심히 촛불을 들었지만 다시 광고탑에 올라가 27일간 단식농성을 해야 했던 해고노동자들을 만날 것이다. 소성리에서 이 땅의 모든 희생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고통은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을 ‘퍼스트 도그’로 입양한다고 했다. 사람이 버린 유기동물을 돌보겠다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세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분명히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에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는 산과 강,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뭇생명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우려가 없을 리 없다. 바로 그 마음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광장에 무수히 피어났던 촛불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계속 타오르길 바란다. 그래서 마침내, 광장에서 분노가 아니라 환호하는 시민들을 보고 싶다. ‘그래, 이게 나라다!’ 그런, 촛불 대통령, 약자의 대통령, 우리 모두의 대통령을 보고 싶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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