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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권투선수 록키 발보아가 떠오른다. 모차르트가 발놀림이 가벼운 기교파 복서라면, 베토벤은 묵직한 한 방으로 승부하는 인파이터가 제격인 인물이다. 잔 펀치를 툭툭 맞으면서 느린 걸음으로 상대를 향해 전진하는 투혼의 복서. 그렇게 베토벤은 종교에서 인간으로 음악의 정신을 확장한다.

그의 교향곡이 없었다면 말러도, 구레츠키도, 진은숙도 다른 색감의 교향곡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베토벤은 자신의 3번 교향곡에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붙인다. 당시에는 파격인 50여분에 이르는 긴 연주시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그늘에서 벗어난 음악성, 장중한 분위기의 도입부 등 베토벤은 세번째 교향곡을 통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다.

박근혜 파면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대선이 막을 내렸다. 모든 정치인의 꿈이 국가 통수권자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지상과제를 예정보다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겨 이룬 셈이다. 이는 비폭력 시위를 완성한 촛불시민의 우산 아래 이루어진 결과임이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야당의 존재감은 지지부진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야권 통합 실패,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 경제불황에 대한 연대책임 등이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2016년 가을까지만 해도 차기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를 자신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결국 정치인이 아닌 대중의 힘으로 작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1804년 완성한 영웅교향곡의 실제 주인공은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공화주의의 이상에 어울리는 혁명적인 지도자 나폴레옹에 대한 베토벤의 추앙심이 교향곡의 탄생 배경이었다. 베토벤은 그를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으로 칭할 정도였으니, 3번 교향곡은 난세의 영웅을 향한 음악가의 용비어천가였다. 하지만 베토벤의 나폴레옹을 향한 짝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나폴레옹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 갈등의 발단이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처사에 분개하여 교향곡 악보를 바닥에 내팽개친다. 교향곡의 이름 또한 사건을 계기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결국 베토벤은 권력욕에 불타는 나폴레옹이 아닌, 권력을 초월한 진정한 위인을 갈망한다는 의미로 3번 교향곡의 제목을 ‘에로이카’라고 정정한다.

광화문 광장을 훈훈하게 달궜던 대다수의 촛불시민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비록 현실은 트럼프의 막말이 판을 치고, 정치공백의 부작용이 산재하고, 아직도 공직을 지키는 부역자 집단이 여전하지만, 촛불시민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을 해냈다. 행여나 정치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국민을 우롱하려 든다면 광장은 다시 뜨거워질 것이다. 그게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체성이자 가야 할 길이니까.

200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이를 하늘나라에서 목도한 베토벤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베토벤이 용산참사와, 언론탄압과, 4대강의 비극을 예견했다면 자신의 음악을 여의도 한복판에서 재현하기를 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로 서거 190주년을 맞은 악성 베토벤. 아마도 그는 통치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위한 영웅교향곡으로 남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한 음악회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연령, 출신, 직업, 빈부를 초월한 모든 인간을 위한 영웅교향곡을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독려하는 시간을 통해서 새로운 대한민국호를 출항시켜야 한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는 조금 다르다. 희비극을 초월한 가치관의 이해와 실천이 정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유권자는 절대권력으로부터 웃음을 박탈당했다. 분노와, 안타까움과, 한 줌의 희망으로 평화 시민혁명이라는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그들. 과연 이번 대통령은 국민의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 줄 수 있을까.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나쁜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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