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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자 올해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홈스는 불타고 있다(Return to Homs)>를 추석 연휴 때 보았다. 먼 나라 시리아의 내전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요동친 것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잃은 유족들조차 투사가 되어야 하는 이 슬픈 나라를 견뎌야 하는 내게, 시리아 민주항쟁의 이야기는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려 40년간 표현·결사·집회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정부 비판자들을 투옥해 온 아사드 일가의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2011년 3월, 시리아 민중들이 민주주의 혁명의 깃발을 들고 일어났다. 영화의 배경은, 내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도시, 홈스. 주인공은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출신으로 민주화 혁명에 뛰어든 청년 바셋이다.

전쟁이나 학살의 이미지가 더 이상 스펙터클조차 되지 못하는 시대에, 이 다큐 영화가 숱한 르포르타주와 분명히 다른 점은, 폭탄이 떨어지는 한복판에서 감독 자신이 생사의 위기를 넘나들며 젊은 혁명 투사의 내면을 섬세하게 기록한 데 있다.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누군가가 죽어가는 장면이 아니다. 폐허가 된 집과 마을을 둘러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낙관적인 열정으로 노래하고 연설하며 동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던 청년 혁명가 바셋이 어느 날, 무너진 벽에 홀로 기대 앉아 절망과 공포와 졸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이렇게 말한다. “지긋지긋해.”

어쩌다 혁명 투사가 된 스무 살의 축구 골키퍼에게 전쟁은 너무 버거운 것이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전쟁터가 아니라 축구장. 그에게 어울리는 것은 총이 아니라 축구공이다.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것을 보며 절망이 그의 영혼을 잠식해 가지만,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홈스로 돌아간다. 독재의 총칼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자유를 찾기 위해 말이다. 죽음을 각오한 건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shooting’이라는 단어는 ‘쏜다’와 ‘촬영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탈랄 덜키 감독은 총 대신 작은 핸디캠을 들고 홈스로 들어갔다. 홈스에서 활동하는 미디어운동가의 70%가 살해되는 상황에서, 감독은 2년 동안 목숨을 걸고 촬영했다. 가족들에게도 다큐 제작을 비밀로 하며 촬영을 강행한 것은, 시리아 내전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상영을 위해 한국을 찾은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리비아 반군을 주변국들이 지지했던 이유는 반군이 석유공급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반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침묵한 탓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홈스는 불타고 있다> 포스터 (출처 : 경향DB)


이 영화의 힘은, 언론의 몰개성화된 난민 묘사와 사상자 통계를 넘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객이 볼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삶과 사연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영화를 보면서 바셋이 점차 내 이웃집 동생 같아진다. 바셋은 축구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몇 년 뒤 월드컵에서 바셋을 볼 수 있을까? ‘시리아 난민 돕기’를 검색창에 치고 들어가 본다. 포화를 피해 고향을 떠나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터키 등을 떠돌며 배고픔과 목마름, 추위, 질병,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수백만명의 난민 어린이들, 남편을 잃고 아무것도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여성들의 사연을 읽다가, 낯익은 한 문구에 멈칫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운 건, 잊혀지는 거예요.” 세월호 유족들의 말 아니었던가. 주류 언론에서 왜곡되고 파묻히는 유족들의 사연처럼, 시리아 난민들 또한 지워지고 묻히고 있다. 후원금을 보내고 난민 어린이에게 쪽지를 보낸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어. 잊지 않을게.”


황윤 |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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