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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연휴에 처음 적용된 ‘대체휴일’이 반쪽에 그치면서 혼란과 부작용을 낳았다. 현행 대체휴일제는 설·추석 연휴가 일요일과 겹치면 연휴 다음날 하루 더 쉬고, 어린이날은 토·일요일이 겹치면 대체휴일을 준다. 하지만 대체휴일이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시행되면서 장애를 야기했다. 재계의 반발에 밀려 정부·여당이 관공서와 공공기관에만 대체휴일을 의무화하고, 민간은 자율에 맡긴 결과다. 그러다 보니 어제 시행된 첫 대체휴일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은행과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인정하지 않고 연차휴가에서 차감하는 영세중소기업은 법정 의무가 아닌 대체휴일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대체휴일 도입 취지로 ‘휴식을 통한 재충전으로 업무생산성 제고’ ‘관광·레저 산업 활성화로 내수 진작 및 일자리 창출’ ‘장시간 노동 완화’ 효과 등을 들었다. 그것이 실현되려면 대체휴일의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하지만 재계의 저항에 굴복해 법이 아닌 ‘공무원 휴일 규정’으로 도입함으로써 누더기 대체휴일제를 자초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대기업은 대체휴일을 누리고,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쉬지 못하는 ‘차별 휴일’을 만든 꼴이다. 그러잖아도 공공부문, 대기업과 나머지 중소기업 사이에 임금·복지 등에서 격차가 심각하다. 쉬는 날까지 차별받는 것은 노동시장의 불평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서울 종로구청 민원실 입구에 대체휴무일 안내사항이 붙여있다. (출처 : 경향DB)


현행 제도는 ‘대체휴일제’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전체 공휴일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설·추석 연휴와 어린이날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민간의 경우 자율에 맡김에 따라 본디 취지를 달성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대체휴일 실시의 목적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선진국들보다 1년에 300~400시간을 더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절반 수준이다. 노동시간이 길다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대체휴일이 의무가 아닌 이상 앞으로도 같은 문제와 혼선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선 향후 10년간 9일, 연평균 0.9일에 그치는 대체휴일이라도 온전히 시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휴식권마저도 국민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게 하는 제도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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