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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권쯤 되는 책과 한 편의 장편영화 각본을 썼지만, 그것들 중 무엇도 내 이름 앞에 ‘전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 주부 말고 ‘작가’ 말이다. 어찌 보면 저렇게 많은 글을 생산해놓고도 전업작가로 생활하지 못한다는 데서 내 한계를 절감해야 했건만, 둔한 것은 늘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만둔 직장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공기업이었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우리 딸이 어디서 뭐 한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 곳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가눌 수 없이 너덜너덜한 정신상태가 되어 사표를 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연달아 잃은 것, 거기에 적절히 애도하지 못한 것이 밤에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는 일상적인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중증의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정신과 치료도 받고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자원봉사도 하고 팟캐스트도 하고, 내리 3년을 악전고투했지만, 정신차려 보니 나는 중풍환자처럼 누워만 지냈다. 그것도 빚만 늘어가는 상태로, 세상에서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뭐 하나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효도하는 딸도 아니고 유능한 직장인도 아니고.

그때 지금 직장의 대표를 만났는데, 그는 내 독자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런저런 하소연을 읽은 상태라 필요 반 측은지심 반으로 일감을 좀 줄 셈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가 하는 일을 알고서 거의 몸을 내던지듯 애걸했다. 저 거기 취직시켜 주세요. 그리로 이사도 가겠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동물원에서 아주 조그만 말 ‘미니어처 호스’를 보고 홀딱 반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운영하는 ‘별내작은말학교’에는 그런 말이 무려 열여덟 마리나 있다는 거였다. 큰 말을 탈 수 없는 꼬마 아이들이 와서 큰 개나 염소만 해서 귀엽고 안전한 이 작은 말들을 타고 함께 노는 곳이었다.

대체로 사회에서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4인 가구 손님이 많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들이 아이, 배우자와 함께 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갔다. 사무실에만 앉아 있을 수 없어 꼬마들이 말을 타도록 돕는 일을 하다 보면, 아이를 낳지도 않았고 결혼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숙련이 필요한 직무에 임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게 분명한 나를, 또래 여성 고객들은 아주 어리게 봤다.

외모가 어려 보인다는 게 아니라, 아직 미성숙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간의 삶에서 나를 아직 ‘진짜 삶’에 돌입하지 않은 상태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예술계통 전공을 가졌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알바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서 ‘아직 진짜로 살고 있지 않다’는 ‘미생’의 낙인이 찍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소위 ‘진짜 직업’이 아닌 비정규직(알바)이기 때문에 정규직의 책임과 고통을 모른다, 아직 남자 맛을 제대로 못 봐서 레즈비언이다, 진정 남자답질 못해서 게이다, 인생을 반쪽만 알아서 페미니스트다, 제 자식을 안 낳아 봐서 반려동물에 환장한다, 세상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예술 한답시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어른이 안 됐다, 부모가 안 됐으니 인간으로 미완성이다 등. 그러다 보니 ‘N포 세대’들은 아직 나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사회 데뷔를 필사적으로 늦추기도 하는데, 그건 그들이 나약한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낙인이 너무나 진하고 뜨겁기 때문이다. 

이곳 ‘별내작은말학교’에는 백구보다 작아서 계속 먹이통에서 밀려나는 ‘바비’부터 빗질해주려는 내 배까지 뒷발로 걷어차는 ‘마스터’, 사람 나이로는 환갑을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는 조용한 ‘미씨’까지 다양하다. ‘캐롤’은 통통해서 늘 손님들에게 임신 의혹에 시달리고, ‘로라’는 툭하면 울타리 빗장을 열고 남의 선산으로 도망친다. 그렇지만 다 다르고 달라서 귀엽다. 

그간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들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못나진 게 아니었는지, 누워만 지내는 동안 괴물처럼 자라난 열등감이 근래 조금씩 날이 무뎌졌다. ‘정상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누그러지자 아이들을 더 반기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엄마로서의 삶을 굳이 택하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버려진 개들을 데려다 돌보면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충족된 게 컸다. 사람 탓에 다치고 영영 고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개들을 보면 지구에서 제일 힘센 종자인 사람인 게 참 미안했다. 

내 새끼를 낳아 잘해줄 힘이 있지만 그 힘을 굳이 쓰지 않고 다른 생명들이 이어져 나가는 걸 돕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다. 유독 꼬맹이 말들이 큰 눈을 뜨고 입술을 오물대며 몸을 비빌 때, 꼬마들이 손을 꼭 잡아올 때, 그토록 긴 폐인 생활을 하고도 아직 내 안에 그런 힘이 남아 있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다. 참 고맙게도.


|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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