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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석 연휴가 지나고 있다. 긴 연휴, 귀성을 포기한 채 한가하게 보내면서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 버릇처럼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속도로 여기저기가 막히고, 서울서 부산, 광주까지 오가는 데 몇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들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모처럼 맞이하는 연휴, 장시간 긴장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라디오를 켤 때마다 귀경객을 위로하는 방송을 듣노라면, 연휴를 앞두고 나눈 “즐겁고 행복한 추석 보내시라”는 덕담들이 무색해진다.

추석 연휴가 즐거움 못지않게 고통의 원인이 되는 현실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남녀와 세대, 약자와 소수자 문제 등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전통 명절인 추석은, 가부장제로 상징되는 기성 권력에 무게중심이 쏠린 날이다. 이른바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은 여성을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의 부담이 극적으로 증가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명절 스트레스와 궤를 같이하는 문제들은 일상 속에 널려 있다. 이는 인문학 공동체도 예외가 아니다.

2. 최근 여성 의대생이나 여성 법조인 비율의 폭발적인 증가에서 보듯 사회 각 분야에서 남녀 격차 해소, 나아가 역전을 드러내는 증거는 많다. 이런 모습은 인문학 공동체에서 두드러진다. 서양철학 공부 모임의 대부분은 물론이고, 유교 경전을 포함한 동양철학 공부 모임에서도 여성 참여자가 남성보다 많다. 특히 문화예술이나 글쓰기, 제2외국어 공부 모임에서는 남성을 찾기 힘들 정도다. 인문학에서 여성 우위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현상일 뿐이다. 가르치는 이의 대부분은 남성인 것이다. 살펴보면 여성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외국어나 문화예술 분야에 편중돼 있다. 난해한 철학 분야에서 여성 학자는 별로 없다. 여기에 텍스트의 생산까지 범위를 넓히면 남성 편중은 더욱 극심해진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에서 남녀 불균등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여성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학문에 부적합하다는 담론을 재생산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남성과 다르게 겪는 경험의 철학적인 성격이 무시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보자. 프로이트나 라캉이 여성이었다면 문외한이 봐도 남성 중심적인 이론을 만들었을 리 없다. 이뿐 아니다. 철학사를 수놓는 저 위대한 사상이나 철학 체계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의식의 근저에는 뒤틀린 유교 가부장제가 자리한다.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다시 일상을 시작하며, 내친김에 조금 더 나아가자. 이 땅의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고, 학생들은 가장 장시간 공부한다. 그런데 왜 우린 갈수록 살기 힘들고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가. 최근 세월호 참사나 군에서의 각종 사건, 사고들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음에도 진상규명과 대안 모색이 이리 더딘 이유는 무엇인가.


3. 비틀거리며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게 보기 민망함인가. 어쩌다 인문학 공동체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는다. 답은 궁색하다. 거창한 꿈이나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닌 까닭이다. 지금까지 목표는 살아남는 것, 공동체가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다행히 적잖은 즐거움과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질문은 이렇게 얼버무리는 말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로 이어진다. 답도 간단하지 않다. 왜, 무엇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느냐에 답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신랄한 질문도 있다. 여유깨나 가진 이들의 허영기 어린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지적 호기심이나 허영심의 충족은 적잖은 이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중요한 동기다. 인문학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이들과 더불어 이런 동기야말로 공동체를 움직여가는 주요 동력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야 뒤집어지건 말건 나 몰라라 하며 인문학 운운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의 삶이다. 연휴 뒤 공동체 학자들과 세월호 참사를 포함한 작금의 현실을 성찰, 진단, 분석하고, 대안을 찾기로 한 것은 공동체의 존재 근거를 돌아보고 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작업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성을 포함한 약자와 소수자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성찰에 있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버려둔 현실은 절망스럽지만, 절망이 없으면 인간은 현실을 돌아보지 않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이를 팽개치는 것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게으른 정부와 정치권 못지않게 중대한 직무 유기일 수 있다. 우리에게 희망은 못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절망과 고통을 껴안고 난 뒤에나 가능하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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