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미국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임무그룹 부장은 자신 휘하의 과학자 수십 명을 모아놓고 무거운 목소리로 이런 말을 던진다. <히든 피겨스>는 미국과 소련이 펼치던 우주 진출 경쟁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한다.
해리슨 부장이 이런 지시를 내린 건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1961년 4월이었다. 영화는 위기감을 느낀 미국, 특히 NASA의 당시 분위기가 소련을 이기기 위해 가혹한 노동조건도 불사했던 것으로 묘사한다.
1960년대 우주 경쟁의 최종 승자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새턴 5호’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 로켓을 제작했고, 여기에 실린 아폴로 11호는 사람을 태운 채 1969년 7월20일 달에 착륙했다. 특수한 국제관계인 냉전을 배경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노동조건을 감수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히든 피겨스>의 시대에서 근 60년이 지난 현재, 냉전 시기 미국도 아닌 곳에서 ‘수당 없는 야근’을 감수하며 우주개발을 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바로 한국 얘기다.
지난 6월21일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에 대해 국민의 환호가 이어질 때쯤,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얘기를 나누는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과학자들은 국민들이 몰랐던 얘기를 털어놨다. “야근을 해도, 휴일근무를 해도 수당이 없다” “자기 돈을 보태 출장을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토로였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누리호를 개발한 주무 연구기관이다. 여론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과학자들을 경제적으로 이렇게 대우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들끓었다.
한 달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변했을까. 항공우주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달라진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을 더 한 것에 대한 수당을 받으려면 정부의 지출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여러 노력에도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이 소속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한국의 우주개발 역량을 기한 없이 지탱해야 할 판이다.
다음달 3일, 한국은 달 탐사를 위한 궤도선 ‘다누리’를 발사한다. 한국이 지구 궤도를 벗어나 다른 천체로 보내는 첫 번째 우주선이다. 성공한다면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된다. 누리호 성공에 이어 한국 우주개발사에 기록될 사건이다.
다누리는 먼 우주를 비행하다 4개월 반 뒤 예정된 달 궤도에 들어간다. 그리고 내년 2월부터 12월까지 달을 본격적으로 관측한다. 이때쯤 우주개발을 주도한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어떻게 달라질지 기재부와 과기정통부는 답을 내놔야 한다. 한국의 우주선이 언젠가 화성도 가고, 태양계 밖으로도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과 맞바꿀 대상이 아니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