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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긁을 때 아무리 용써도 손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읽을 수는 있어도 발음할 수 없는 시니피앙 ‘어’와 ‘으’, 달의 뒤편이다 천수관음처럼 손바닥에 눈알 붙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내 얼굴, 달의 뒤편이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더듬이 떼고 날개 떼어 구워 먹을 수는 있어도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 내 눈동자의 뒤편이다

장옥관(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에 뒤쪽이 있다. 그곳은 잘 닿지 않는다. 한꺼번에 힘을 몰아 쓰더라도 미치지 못한다. 마치 손으로 긁으려고 해도 미치지 못하는, 너른 등짝의 한 곳처럼. 달의 이면(裏面)처럼. 경상도 사람은 ‘어’와 ‘으’를 옳게 발음하지 못하는데 이 영역도 달의 뒤편 같은 것이요, 내가 볼 수 없는 내 얼굴도 달의 뒤편 같은 것이다. 또한 가을날의 밤에 듣게 되는 애절한 귀뚜라미의 울음도 우리가 애써도 갖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가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뒤편이 있다. 내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능력 밖의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용을 써도 되지 않는 일은 남의 손을 빌려서 하면 된다. 어울려서 한 벌이나 한 쌍을 이루면 된다. 손뼉을 부딪쳐 소리를 내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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