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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로도 알려진 이 일도 어느덧 만 1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 후의 이야기를 간단히 기록해 경향신문의 독자들께도 알리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나와 정확히 10살 차이인 19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사실 포기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1993년생 김민섭씨는 자신이 휴학생 신분이며 졸업전시비용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째서 1년에 10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졸업을 하기 위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여행을 가기에 가장 적합한 김민섭씨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항공권 양도를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행히 김민섭씨가 아니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과 같은 정중하고 다정한 제안을 해왔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항공권을 지원해 주어도 여행을 갈 수 없을 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김민섭씨도 항공권 외의 다른 비용이 부담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숙박비를 부담해 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연결해 드리고, 나는 “김민섭씨를 찾았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축하의 댓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했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1) 저에게 12월31일까지 유효기간인 후쿠오카 그린패스권(일일 버스 승차권)이 있어요. 저는 어차피 올해 다시 갈 일이 없을 테니 등기로 보내드릴게요. 2) 저는 와이파이 렌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김민섭씨가 꼭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3) 얼마 전 후쿠오카타워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입장권이 한 장 남아 있는데 보내드리고 싶어요. 1만8000원을 돌려받느니 차라리 이름이 같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항공비에 더해 숙박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후원하겠다는 개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는 카카오에서도 스토리펀딩을 통해 그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했고, 결국 여행을 다녀오고도 한 청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모였다.

공항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섭씨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고 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저 사람들이 잘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수백번의 생각을 하면서 공항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몹시 피곤해 보여 설레서 잠을 못 잔 모양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친구들과 준비하는 공모전이 있는데 여행을 가기 전 자신의 몫을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왜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청년의 여행을 도왔는지를 알았다. 지금도 내가 아는 많은 20~30대들이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다. 1993년생 김민섭씨를 도운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주변의 평범한 청년을, 자신의 자녀를, 무엇보다도 평범한 스스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은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김민섭씨는 나에게 “왜 작가님을 비롯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줬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고 그의 여행을 도운 모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언젠가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꼭 찾아서 제가 여행을 보내줄게요”라고 말하고는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2018년, 나의 한 해는 어느 한 청년 덕분에 무척 행복했다. 그는 얼마 전 학사 과정을 수료했고,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제 곧 2019년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잘됨은 우리 사회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잘되면 좋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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