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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비행청소년의 타자화

opinionX 2018. 12. 20. 11:14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꽤 괜찮은 한 해였다. 새로운 취미 덕이다. 음악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음악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음악과 무관한 고민 상담까지 받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나면 후련했고 많은 일이 분명해졌다. 그는 내게 정규 교육 과정에서 만난 어느 누구보다 좋은 영향을 줬다.

그는 소년원의 아이들도 가르친다. 그곳 아이들의 마음도 연 것으로 보인다. ‘마성의 선생’이다. 출소한 어느 아이는 숱한 밤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그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다시 ‘사고’를 쳐서 ‘감방’에 갔고, 그가 아이들에게 그 전만큼은 마음을 열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고 나니 미운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한 얘기만 하거나, 사업해서 크게 한탕할 거라기에 들어보니 결국 누군가에게 사기 치겠다는 얘기인 애들이 답답하다고 그는 토로했다. 이해되는 한편, 그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길, 포기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청소년’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바르게만 자라왔나 궁금해진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오해 사기 싫으니, 형사처벌 받을 일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상처 될 일을 왕왕 저지른 어린 날이었다. 가슴속 응어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 속 행복의 형상은 내겐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게 억울했다. 평생 절약해도 1억원 모으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집값은 수억원이 기본이라는 사실도 막막했다. 학교에서의 차별과 부조리, 열의 없는 선생들과 납득되지 않는 억압들도 숨통을 조여왔다. 세상이 싫고 어른들이 미웠다. 그 마음을 좋지 못한 방향으로 표현했다. 응어리가 풀리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카메라를 들며, 좋은 어른들을 만나고 내가 표현하는 바에 귀 기울이며 공감을 표하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며, 무엇보다 경제적 안정을 이루며 좀 나아졌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는 절대적 빈곤 계층에 속하지 않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뒀을 뿐 내게 적극적인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상당수 소년범의 경우는 다르다. 절대적 빈곤 계층에 속하며 부모가 학대한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서 뛰쳐나와 고시원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으나 주어진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곳뿐, 일하는 시간 중 모멸감을 견딜 때가 많고 밥 먹고 월세 내면 모이는 돈 없으며 취미 생활은 사치일 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출구가 없을 거라는 현실인식이 들 수 있음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건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대신 이미 태어나 고통받고 있는, 현존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고 희망을 찾아주는 일에 더 관심이 간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행동이 도출되기 너무 쉬운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행위를 한 개인 탓만 하는 사회가 부도덕하게 느껴진다. 특히 미래세대의 몫까지 빨아들여 버블을 형성해놓고 ‘성장’을 이뤘다며 좋아하는 촌극에 아직도 적응 안된다. 이제 자원의 분배를 디자인하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사회 변화는 더디기에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일상을 버텨야 한다. 모든 소년원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 음악 선생님이 출강하는 곳은 그가 가르치는 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일과가 없다. 여기에는 공무원의 ‘적당주의’ 탓도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의 온정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기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지 살펴보고, 마땅한 것이 있으면 가담하는 일이 내년의 목표 중 하나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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