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직설

‘메리와 해피와’

opinionX 2018. 12. 26. 11:12

크리스마스다. 거리에서 캐럴이 들리고 대형서점 앞에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 카페 안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반짝이는 것, 화려한 것, 갖고 싶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무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별은 가장 갖고 싶은 어떤 것이다. 자주, 오랫동안 그윽하게 바라보게 된다. 맨 위에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은 얻기 쉽지 않은 것이다.

얻기 쉽지 않은 것을 상상해보는 일은 크리스마스 때 가장 많이 했던 일이다. 인형과 로봇, 게임기와 컴퓨터 등 욕망은 매년 커졌다. 물건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통해 욕망이 팽창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것이 대학 입시나 취업 등 합격과 불합격의 문제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크리스마스에 욕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소원을 빈다고 해서, 소원이 절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으리라.

작년 이맘때쯤 나는 ‘메리와 해피와’라는 시를 썼다. 길 가다 충동적으로 산 크리스마스카드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라고 적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고, 연말은 연시와 아주 가깝기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길 바란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믿는다. 처음과 끝은 우리가 축하할 만한 것들이니까. 시작하는 마음과 끝내는 마음이 같지 않을지라도, 마음은 그렇게 매년 새로 태어나기도 하니까.

‘메리와 해피와’는 “메리는 즐겁게 지내려고 애쓰는 아이/ 즐거운 아이는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즐거운 아이는 아니지만 즐겁게 지내려고 애쓰는 삶은 나를 닮았다. 삶은 보통 지루하고 즐거운 순간은 간혹 찾아오지만, 즐겁게 지내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즐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믿었다. 가만있는 자에게 즐거움이 찾아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고 극장에 가고 신나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

“해피는 행복한 척하려고 애쓰는 아이/ 행복한 아이는 아니다”라는 구절도 있다. 행복한 아이는 아니지만 밖에서는 행복해 보이려고 애쓰는 삶은 나를 향해 있었다.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에 어떤 일도 없다고 손사래 치며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이 겹쳤다. 나는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옳지 않다 믿었다. 행복한 척 애쓰다 보면 행복한 순간이 깃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올해도 길 가다 크리스마스카드를 하나 샀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는 문구가 어김없이 적혀 있다. 기념일이나 연말연시 등 어떤 시기에 마음을 나누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도 주변에 즐거움을 나누는 일,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도 가까운 이들의 행복을 비는 일만큼 말이 안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말이 안되는 일이기에, 나와는 아직 먼 일이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다행히 ‘메리와 해피와’의 후반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게/ 어떤 시간은 순간이 된다는 게/ 순간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추억이 된다는 게.” 크리스마스카드에 위의 구절을 천천히 적었다. 나는 즐겁게 지내려 애쓰는 마음이, 행복한 척 애쓰는 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당장의 날 속이는 것 같을지라도 내게 더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잊지 않게 해준다. 그것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나르는 사연들, 한 송이 한 송이 절실한 그리움들은 사람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거기에는 차가운 눈(雪)과 따뜻한 눈(目)이 다 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눈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빛이 가득할 것이다. 힘든 사람에게는 이 풍경이 낱낱의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눈이 내리고 얼고 녹고 증발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 언젠가 희망으로 뿌리리라. 이런 믿음이 내일을 열어젖혀줄 것이다.

흔히 즐거움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멀리 있다고,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단어들을 곁에 두지 않는 한, 정작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당황하고 말 것이다. 일부러 소리 내어 곁에 있는 이들에게 메리와 해피를 전해야 하는 이유다.

<오은 | 시인>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의 분배  (0) 2019.01.03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0) 2018.12.27
비행청소년의 타자화  (0) 2018.12.20
일상의 터전  (0) 2018.12.18
100년 전 ‘문자 먹방’  (0) 2018.12.13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