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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담양은 대나무 고장이라 눈에 뵈는 것이 모조리 대나무다. 어려서 대나무 뿌리로 만든 날쌍한 매를 들고 출석부와 함께 교실로 들어오시던 선생님들을 잊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저 대나무들이 죄다 매로 보인다. 지금은 대부분 남녀공학이지만 우리 자랄 땐 남녀가 유별하여 거의 합숙소 같은 딴살림. 그 합숙소에선 매일같이 교사에 의한 폭력이 이뤄졌다.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을 때려잡던 군사정권. 교사들도 학생들을 상대로 계엄군처럼 군림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자기 기분 따라 매질을 즐겼다. 남학교에선 군대식 얼차려와 귀싸대기로 입시 지옥보다 무서운 주먹세계가 펼쳐졌다. ‘사랑의 매’라는 말은 몽둥이로 개를 잡을 때 쓰는 말로 여겨졌다. 물론 있는 집 자식들은 따로 빼돌려서 매를 아껴주는 센스. 스승의날마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 먼저라고 난 생각해. 요즘이라고 나아졌는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호들갑이지만 더 못 패고 더 차별하고 더 군림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특정일에 노골적으로 돈과 선물을 요구하던 분, 가난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던 분, 개성 넘치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던 분들이 교단에 높이서서 큰소리치던 시절. 그렇게나 애들을 몽둥이로 잡던 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참교육 전사로 돌변하던 상황도 참 허무극이었다. 시험을 본 다음날이면 온종일 성적순으로 매질이었고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첫 교시에 등장하던 이들을 우리는 스승이라 불렀다. 대뿌리 선생님이란 대처럼 꼿꼿해서가 아니라 대뿌리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분의 어이없는 별명이었다. 그런 교사만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동료를 뜯어말리지 못한 나약한 교사도 결국 한패가 아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진실하게 눈물 뿌리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를 수 있길. 구시대의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에게는 스승의날을 한껏 축복하고 싶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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