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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학력 간 임금격차는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고졸자의 평균 급여를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 급여는 177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으나 8년이 지난 2015년에는 137로 감소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학벌사회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추세는 대학진학률과 저임금 대졸 청년층의 증가세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진학률은 2001년 70%대를 돌파했고 2008년에는 83.8%에 도달한 반면, 고졸자 평균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대졸 청년층 비중은 2000년 15%대를 넘어서 2010년에는 23%를 기록했다.

따라서 이런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많은 학생들이 고임금을 기대하고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에는 대학 졸업자가 너무 많이 배출되어 오히려 학력 간 임금격차가 급감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이 시기 대학생의 부모들이 베이비붐 세대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단순화하자면,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는 1970년대 초반 이후 고도성장의 흐름을 타고 도시로 이동했다. 그들 중 일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수도권 신도시나 광역시 신시가지에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으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고,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나머지는 또래 대졸자들의 인생 항로를 지켜보며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겐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들이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들과 함께 당도한 21세기는 사교육 열풍과 등록금 인상과 학자금 대출의 시대였다. 그들의 자녀 교육 전략은 경제력과 정보력에 따라 계층별로 뚜렷이 분화되었다. 화이트칼라 중산층들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아이의 체력”이라는 명문대 입학 조건을 충족시키며 불철주야 사교육 현장을 누볐을 것이고, 중산층 내 하위 집단은 가계의 출혈을 감수하면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전략을 모방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며, 중산층 내 상위 집단 일부는 ‘기러기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완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0년대 초반, 동남권 공업벨트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측에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했던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이들 노동자 상당수는 1970년대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고에 진학하거나 직업훈련원에 입소한 후, 빈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숙련 노동자로 거듭났던 베이비붐 세대였다. 그들은 노동자로서 거의 유일하게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집단이었다.

혹시 이들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는 대학생 자녀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결과였던 것은 아닐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당한 동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곁에서 지켜본 이들에게 추락의 공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귀족노조’라는 보수언론의 비판은 이 공포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만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저소득층의 자녀 교육 전략은 위의 집단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학자 신명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층 부모일수록 자녀가 “서열이 낮은 이름 없는 대학”에 진학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적성을 살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곤 했다. 그들에게는 “어떤 대학인가보다 대학을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계층별 전략은 진화를 거듭하며 대학 서열 체계를 더욱 강화했고, 그 강화의 증가분은 재학생 부모의 경제력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이 경쟁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사실 도시 곳곳에서 그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장학금 제도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선 채로 학업을 지속하면서도 최저시급의 서비스 노동자로 매주 20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니까. 즉 그들은 대학생이면서 노동자라는 이중의 정체성으로 2017년의 “헬조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계층세습과 관련된 대학교육의 해법 마련을 위해서라면 목소리 큰 중산층보다는 이들의 현실을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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