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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옛 공업고) 재학 중 현장실습을 나간 김모군은 공장에서 ‘고삐리’로 불렸다. 하루 12시간 일했지만 월급은 수당을 합쳐 100만원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김군은 학교에 찾아가 담임 교사에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지만 담임은 “다른 회사도 다 똑같아, 참고 다녀”라고 말했다. 지난 9일자 경향신문에 소개된 김군의 사연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장실습 과정에서 교육을 빙자한 노동 착취를 하지만 교사의 가르침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6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19세 청년 노동자도 김군과 똑같은 교육을 학교에서 받았을 것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따뜻한 밥 한 끼 제때 먹지 못하고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닐 정도로 업무가 과중했지만 그는 묵묵히 참고 일하다 결국 숨졌다. 지난 1월 전주에서는 통신사 콜센터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 3학년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학생이 일한 부서는 고객들의 상품 해지를 막는 곳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각해 3년 전에도 자살자가 발생했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지난 6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학 안 가도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고졸 취업을 늘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다. 그러나 특성화고 학생들의 반인권적 노동 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 교육이 문제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라는 것은 달달 외우게 하면서도 헌법에 함께 명시된 노동인권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엊그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합동으로 마련한 ‘일반계고 비진학자 취업지원 서비스 강화방안’만 봐도 그렇다. 일반계고 졸업자 직업교육 대상자를 지난해 6000명에서 올해 1만4000명으로 2배 이상 늘리는 내용이 핵심인데 이들을 위한 노동인권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에 진학하든 90% 이상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하고, 노동자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자와 교섭을 벌이고 파업을 할 수도 있다. 학교는 이런 것부터 가르쳐 학생들이 스스로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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