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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가 1명인 경우 득표수가 선거권자의 3분의 1 이상이라야 당선된다고 헌법 제67조 제3항이 정하고 있다. 투표한 사람이 아니라 선거권 가진 사람의 3분의 1이다. 지금껏 단독후보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기준을 적용해보면 당선이 가능했던 대통령은 김영삼(33.9%), 노무현(34.3%), 박근혜(39.0%) 세 사람뿐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당선한 윤석열 후보(37.1%)와 낙선한 이재명 후보(36.5%)가 모두 선거권자의 3분의 1을 넘겨 득표했다.

단독 출마가 아닌 경우 최고 득표자가 당선한다고 헌법 제67조 제2항에 정해져 있다. 이 최고 득표자를 정하는 방식은 공직선거법에 있다. 현재는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이기는 상대다수결이다. 이것을 바꿔 과반을 차지한 사람이 뽑히는 절대다수결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려면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 절대다수결의 장점으로 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이 강화한다, 다당제가 자리 잡는다, 투표율이 올라간다는 점 등을 꼽는다.

절대다수결이 더 나은 제도라면 가중다수결은 어떨까. 독일 헌법재판관은 연방하원과 연방상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지명한다. 국민에게 선출되지 않는 사법기관 구성원이 간접적이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 헌재도 법률을 위헌 폐지하려면 재판관 6명이 필요하다. 7명이 재판해도 6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각제 국가에서 총리를 국민이 직접 뽑자는 주장이 있다. 이스라엘이 1996년 총리 직선제를 도입했다. 이렇게 가중다수결이 좋다면 만장일치는 더욱 좋을 테다. 이처럼 민주주의에서 숫자의 힘은 반박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이번 대선을 보도한 외신 가운데 일본 언론이 특히 열성이었다. 일본은 직접선거에 대한 선망이 있다. 과거 나카소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총리 직선제를 주장했다. 민주적 정당성 강화를 내세우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원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총리 직선제에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행정과 의회가 대립해 국정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행정이 거대화·전문화한 현대국가에서는 행정과 의회를 분리한 대통령제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일본 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반대하는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대학 교수도 총리 직선제에 부정적이다. 세계적 헌법학자인 그는 소수자 보호를 보장하는 입헌민주주의는 만장일치보다 다수결이 걸맞다고 주장한다. 소수자를 궁지로 몰지 않고 최다로 유지하면서 집단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령 51 대 49로 이긴 권력은 패배한 쪽을 거칠게 대하기 힘들다. 이런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절대다수결보다 단순다수결이 입헌민주주의에 충실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소수가 마음을 푸는 과정이 통합이다. 다수가 통합을 강요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선거제도를 조정해도 선출되는 권력은 다수를 추종하게 마련이다. 더러 법률-시행령-시행규칙으로 이어지는 입법이 섬세하게 소수자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통과시키는 법률부터 행정부가 만드는 시행규칙까지 모든 입법은 다수의 의사를 문서화하는 과정이다. 다수의 힘과 의지가 섬세하게 관철되는 절차이지, 소수자를 보호해 나라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대통령 선거전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두려움을 호소하는 여성에게 차가웠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자단 간사로서 수사검사인 그와 마주하던 시절의 모습과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섬세한 사람이다. 아무리 젊고 운동을 좋아해도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된다며 찬물을 들이켜지 말라는 말을 했고, 함께 통음한 다음날 점심에 다시 불러 취해서 못다 한 설명을 해줬다. 업무 관계에서 나오는 친절함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사람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사법부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다. 판사 한둘의 비리를 기소한 정도가 아니라 사법농단 수사를 계기로 법원을 꿇어앉혔다. 불세출의 수사검사이자 사법부의 약점을 꿰고 있는 그가 소수자 보호까지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는 삭막한 지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는 강직한 검사였고 그래서 국민이 지지했다. 그가 원하는 정권교체가 됐다. 이제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섬세하고 따뜻한 국정을 펼쳐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이범준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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