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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한국일보는 경북 경산에 있는 ‘작은 교회’ 이야기를 전했다. 유명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신도가 30여명뿐인 하양 무학로 교회를 무료로 설계해 주었다는 가슴 따뜻한 내용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크게 짓기만 하는 대도시 대형교회와 달리 단층으로 작게 지어 교회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내 담당 분야에 이런 좋은 기사거리가 있었는데 몰랐다는 자책과 함께 기사를 읽는데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승 대표가 설계비를 제외하고도 교회 건축비가 턱없이 모자랐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빚 없이 완공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도움을 준 이웃 명단에는 ‘경쟁 관계’인 경북 은해사도 있었다.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관 스님은 “뭐 그런 걸 다 물어보냐”며 “근처에 어려운 교회가 있어 돈을 조금 보탰다. 나도 하느님께 복 한번 받아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시쳇말로 참 ‘쿨’한 반응이었다. 그 교회 목사님과는 그 이전부터 교류하며 지내던 사이라고도 말했다. 종교를 담당하면서 쿨한 성직자를 많이 만났다. 불교 조계종 스님들도 적지 않다. 다른 종교와 종단에도 항상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사회 문제를 두고 발언하는 데도 거침없는 분들이 많다. 스님 개개인의 성품도 있겠지만, 불교 특유의 열린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님들의 ‘쿨’한 성품이 작용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조계종 내부에 만들어진 노조(조계종 노조)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스님들은 노조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종무원들로 이뤄진 조계종 노조는 지난달 4일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 마련을 위해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월18일에는 총무원이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다. 종단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사용자’로 명기했다.

노조의 ‘공격’에 조계종 총무원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5일 조계종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 3명을 대기발령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같은 달 10일 ‘산불복구 지원’이란 명목하에 이들을 강원도 낙산사로 전보 조치했다. 일반 기업들이 노조를 압박할 때 쓰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스님들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지난달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행 스님은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도 아닌데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기획실장 오심 스님은 “각 사찰에 가보니 무슨 불교에서 노조냐고 의아하게 생각한다”며 “(사찰)분담금 내지 말고 종무원 없이 운영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스님들이 모든 노조에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국내 최장기 분쟁사업장이었던 콜텍의 노사가 13년 만에 합의하기까지 조계종은 노조에 큰 힘을 보탰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2012년부터 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했고 지난달 22일 콜텍 노사가 합의할 때도 함께했다. 조계종이 발행하는 불교신문은 지난달 27일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이 조계종과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조계종이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스님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종교단체의 종무원’이 만든 노조와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는 다르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도 노조의 업무는 같다. 노조는 임금인상이나 복지확대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그중에는 사용자의 전횡을 견제하고 일터의 건전성을 지키는 일도 포함된다. 종단 내부의 노조도 쿨하게 대하는 스님들을 보고 싶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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