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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인 한 회사 후배와 대화를 하다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저는 영화 잘 안 봐요. 유튜브에 가면 짧게 짧게 설명해 놓은 영상들 있어서 그걸 봐요. 몇 시간 동안 어떻게 봐요.” ‘아 그렇구나!’


입사 16년차인 나에게 그는 ‘요즘 후배’의 기준이다. 그는 센스 있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제 몫을 해낸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지만 선이 확실하고 끈적한 관계보단 산뜻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대체로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겐 비슷한 특징이 엿보인다.

이런 90년대생이 한꺼번에 우리 팀에 몰려왔다. 영상 제작을 함께할 인턴PD가 합류한 것이다. 앞으로 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258쪽에 나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트위터 멘션. “망연자실한 리서치 결과 십대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로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놔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영화의 적이 휴대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16년 전엔 나도 신입이었다. 입사 2년차쯤, 당시 15년차였던 한 선배가 신입인 나에게 적잖이 당황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거침없고 직선적이었다고. 이제 추억을 곱씹는 선배가 됐지만 말이다. 앞에 언급한 책에 채현국 선생님(효암학원 이사장)의 발언도 인용되는데, 채현국 선생님은 2014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가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라고 했다. 나이가 들고 ‘아비’가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거늘 이런 가차 없는 말씀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그리 섭섭할 일은 아니다. ‘아비’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연륜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생겨나는 사이에 어쩌면 현실에 만족하며 변화에 소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썩는다’는 채현국 선생님의 표현을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아비’가 되는 것. 어쩌면 ‘아비’로 생존하는 것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어쩐지 선배 세대가 억울하다고? 아니다. 90년대생도 언젠가 ‘아비’가 된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어른됨을 고민하다가 생각의 끝은 신문에 이른다. 신문은 올드 미디어다. 레거시 미디어, 트래디셔널 미디어 등 올드 미디어를 부르는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어쨌든 뉴미디어는 아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고 유튜브를 위시한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도 달리고 있지만 어느새 늙어버렸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레거시 미디어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노하우가 축적되는 사이 지금의 방식에 안주하게 되고 도전정신은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올드 미디어에 쏟아지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치 있는 언론으로 남는 것은 미디어 스타트업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의 시대에 신문은 ‘아비’가 아니라 다시 태어난 ‘아들’을 자처하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혁신이 그렇게 쉽냐고? 아니다. 그렇지만 변화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고민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이미 미디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해 줄 초인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아비’와 ‘아들’이 함께 만들어갈 뿐이다. 이제 90년대생 인턴들이 쓴 뼈 때리는 콘텐츠 분석 보고서를 더 읽어 봐야겠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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