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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같은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여론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 온라인 기사 등에 달린 댓글로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집값에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집값 하락을 염려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일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밀어붙여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그 학교를 매일 다녀야 할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다 서울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생각났다. ‘센터’라는 ‘폼나는’ 이름을 달아 새로 짓기 전에는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특수학교와는 비교가 안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국립서울병원은 2002년까지 타지역으로 이전이 추진됐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원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도 내치려는 시설을 다른 지역이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2006년부터는 ‘재건축’이 추진됐다. 현재 있는 자리에 정신병원을 더 크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은 다시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정신질환 치료에는 도심이 아닌 자연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란 소리였다. 병원 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복지부와 병원 측은 ‘국가 땅에, 지금 병원이 있는 곳에 다시 짓는데 주민들이 왜 반대하냐’고 반박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쳐 국립서울병원은 지난해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편해 문을 열었다.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10여년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남윤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서울병원에서 기획홍보과장을 지냈다. 재건축추진 실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고, 얻어 맞기까지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남 박사를 찾아갔다. ‘혐오시설’을 지으면서 그만큼 많이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남 박사는 “주민들을 무조건 많이 만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 측은 먼저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새 정신병원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렇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이어 정신병원 재건축을 지역발전과 연계시켰다. 재건축 계획은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거쳐 종합의료복합단지로 확장됐다. 개원 후에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정신과 외 다른 진료과도 개설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이제 중곡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학생들은 병원 내부를 지름길 삼아 통학한다. 동네 노인들은 저렴한 병원 구내식당을 즐겨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맛보기도 한다.

10여년 전 정신병원이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풍경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상력을 발휘했고, 동의했고, 현실이 됐다. 남 박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부 주민들은 나중에 가장 큰 우군이 됐다고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기념관 동판에는 남 박사와 주민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남 박사는 “저희는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수학교는 그보다는 훨씬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이라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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