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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의 청소년이 어머니 계정을 이용해 쿠팡이츠 배달을 했다가 논란이 됐다. 쿠팡이츠는 계정을 정지시키면서, 플랫폼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부산 배달대행사에서 일한 라이더는 사고가 나서 일을 못했는데, 하루 4만5000원의 오토바이 리스비를 갚지 못해 700만원의 빚을 졌다. 두 사례 모두 법으로만 따지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 노동조합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일부노동자에게 노조를 결성해 사용자의 부당한 대우에 맞설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은 노조법을 비웃으며, 다양한 꼼수를 쓰고 있다.

쿠팡이츠에서 배달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모집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쿠팡이츠 배달을 할 라이더 5명만 모으면 ‘벤더’라는 이름의 사장이 될 수 있다. 본사는 벤더에게 배달료를 지급하고, 벤더는 라이더 모집과 관리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긴다. 벤더에 대한 자격확인도 없다. 심지어 라이더유니온 간부에게 연락해 노조간부가 본사직원과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을 담당한 본사 직원은 벤더에게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했는데, 배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쿠팡이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본사는 이를 ‘쿠팡이츠 플렉스’라 이름 붙였다. 쿠팡이츠플렉스 라이더도 쿠팡이츠 앱에 접속해 일하지만 서류상 쿠팡이츠와 관련이 없게 됐다. 배달노동자들을 근로자로 고용하지 않아 최저임금, 퇴직금, 오토바이 비용부담에서 벗어난 쿠팡이츠는 중간 사장님을 모집해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은 물론 경영상 책임에서마저 도망가려 한다. 벤더들 중에는 본사에서 받은 배달료를 라이더에게 지급하지 않고 잠적한 사람도 있다. 피해 라이더가 본사에 문의하니 벤더에게 이미 배달료를 지급했다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답했다. 동네배달대행사도 총판과 지점장 등 다단계식 구조로 책임을 떠넘긴다.

배달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배, 건설, 제조, 프랜차이즈 등 전 사업에서 유연화된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다단계구조를 이용한 책임 전가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노동이 쪼개지고, 녹아내리고 있다며 우려했지만, 쪼개지고 녹아내린 건 자본도 마찬가지다. 본사의 지시대로 일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지는 사장님이 대량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노조를 탄압하면 단기적으로 지지율을 올려 정권을 보호할 수 있겠지만, 변화하는 산업과 노동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산업 문제를 제일 잘 아는 건 현장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현행 노조법으로는 기업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노조법 2, 3조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계약형식이 아니라 근로조건에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미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 노조가 본사와 협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실질적인 파업권을 보장해야 폭주하는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의 살을 찢듯, 노조 역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파업을 한다. 그 장면이 보기 싫고 무섭다고 해서 의사를 없애지 않는다. 우리가 도려내야 할 대상은 노조가 아니라 무책임하고 야만적인 자본의 경영방식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연재 | 직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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