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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가 10월28일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45001) 인증을 받았다. 법적구속력은 없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쿠팡이츠는 노동자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라고 보증해준 셈이다. 쿠팡이츠도 자랑스러웠는지 행사현수막에 ‘배달 업계 최초 인증’을 새겼다. 김명규 대표는 자신 있게 “안전 관리 노력이 이번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 취득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ISO 인증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노동자 참여다. 그러나 인증대행기관인 DNV는 노조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다. 배달노동자들은 쿠팡이츠를 최악의 기업으로 꼽는다. 쿠팡이츠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인 2시간 안전교육을 듣지 않은 라이더에게도 일을 시킨다. 노동자들이 영업용 보험에 가입했는지 확인하지 않으며, 자전거 킥보드 등을 위한 보험도 없다. 배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상식도 지키지 않아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1시간에 3건 미션을 완료하면 프로모션을 주는 깜짝 프로모션을 시시때때로 올리고, 기본료는 2500원에 묶어둔다. 노동자들은 미션에 실패할까 두려워 가슴을 졸이며 위험한 주행을 감행하는데, 쿠팡이츠는 눈이 오는 위험한 날에 더 많은 프로모션을 지급하여 사고 위험을 높인다. 그 결과 쿠팡이츠는 대한민국 산재신청 9위 기업이 됐다. 쿠팡 주식회사는 산재신청 2위, 쿠팡물류센터는 7위다. 쿠팡은 물류센터 사망사고와 에어컨 미설치, 택배 과로사 문제 등 산재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어떤 노동조합과도 단체협약을 맺지 않고 있다.

ISO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배달기업 중 노동자 안전과 소비자 편익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장관 명의의 인증서를 수여한다. 산재신청기업 1위 우아한청년이 1호 인증사업자였고, 쿠팡이츠도 인증을 받았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문가 등의 심사를 3개월간 받아야 하는데, 70점을 넘으면 된다. 심사표를 보면 종사자보호와 관련해서 무려 40점이 배정됐다. 안전교육과 보험, 표준 계약서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표준계약서도 없는 쿠팡이츠가 어떻게 70점을 넘었는지 의문이다. 인증을 받은 바로고 등 배달대행 프로그램사들도 자사와 계약을 맺은 지사장이 표준계약서를 쓰는지 보험확인은 하는지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다. 바로고는 얼마 전 앱접속 장애가 생겨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자신들은 배달노동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며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노동자를 위한 기업이라고 인증받았는데, 정작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관계없다고 말한다.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기업이 친환경기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그린워싱’이라 부른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을 씻어내고 홍보하는 기업의 행태는 ‘산재워싱’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실제로 ISO 인증 업무를 대행하는 기업 광고 문구에는 ‘사회적 이미지 제고’가 적혀 있다. 쿠팡을 비롯한 산재기업이 안전보건문제에 대해 제대로 검증받고 인증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다. 노동조합이다. 지난달 28일 행사에서 김명규 대표 옆에 엉뚱하게도 앤 캐리 한센 오빈드 주한 노르웨이 대사가 서 있었다. 그가 노르웨이 대사가 아니라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의 마음을 얻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연재 | 직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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