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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경험에 입각해 보다 정확하게 말하라면, 이른바 한국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라면, 도서관과 얽힌 ‘불유쾌한’ 추억 한둘은 갖고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 사이에는 종종 입에 올리는 추억들이다. 먼저 저 유명한 <열하일기>로 물꼬를 터보자.

몇 해 전 <열하일기>를 깔끔하게 번역한 모 대학 교수님의 이야기다. 이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 역시 <열하일기>다. 논문에는 <열하일기>의 여러 이본을 조사한 부분이 있었다. <열하일기>는 18세기 말부터 엄청나게 읽힌 책이지만, 인쇄된 적이 없다. 모두 필사본으로만 전한다. 필사 과정에는 필사자의 실수로 인해 수많은 변개(變改)가 일어난다. 또 원작의 특정한 부분이 필사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의도적으로 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전혀 다른 책이 되어 버리는 것인데 <열하일기>의 한 이본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박지원이 쓴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여러 이본을 대조해 가며 원본을 짐작하는 작업이 퍽 중요한 일이 된다.

국내의 어떤 대학은 <열하일기>의 중요한 이본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교수님은 당연히 그 도서관에 가서 복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복사는 불허였다. 앉아서 베껴 가란다. <열하일기>가 그 도서관에만 있는 책이고, 또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는 책이라면 베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본 연구가 아닌가?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앉아서 베끼는 수밖에. 보다 못한 사무원이 그 담당자가 없을 때 조금씩 복사를 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유수한 대학 도서관에 중요한 필사본이 있다. 이 도서관 역시 귀중한 책이 많다고 자랑하는 곳이다. 그 책의 전편은 이미 영인본이 나와 있어 나 역시 충분히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출간된다는 광고만 있을 뿐 출간은 되지 않고 있었다. 그 대학 도서관에서 어떻게 복사를 해볼까 하고 친구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더니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경우 늘 그렇듯 즉각 체념하는 것이 인격을 수양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인격 수양을 포기했다. 그 친구가 우연히 도서관에 갔더니, 부전지(附箋紙)가 많이 붙어 있어 복사가 안된다던 그 책이 복사기 위에서 한참 열을 올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복사해 주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서양인 학자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런 일은 거의 모든 도서관에서 반복된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다. 서울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차례 찾아가 그 책을 빌려 검토하고 복사를 했다. 하루는 책을 신청했더니 사서가 책을 내어주며 작은 소리로 “읽을 줄이나 아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중얼거리는 듯한 작은 소리였지만 내 귀에 똑똑히 들렸다. 아마도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찾아와 자꾸 고서를 빌려 달라고 하니, 귀찮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다. 서고는 쇠그물 건너편에 있었기에 나는 그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어쨌거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한편으로는 증오감이 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나는 갑이 아니라 을이 아닌가. 다시 인격을 수양하는 수밖에.

그로부터 얼마 뒤 다시 도서관을 찾아 그 책을 빌리려 했다. 지난번 복사할 때 채 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 얼굴 모르는 사서는 그런 책은 없다고 했다. 목록에는 있는데요, 그리고 지난번에 빌렸는데요? 아, 없다는데 왜 그래요! 그 책은 끝내 빌릴 수 없었다. 그 뒤 (지금) 서울의 큰 대학 교수가 된 친구 아무개 역시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빌리려 했지만 책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왜 책이 갑자기 없어졌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나면 사정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라는 것이 있다. 경술국치 이후 모든 신문이 폐간되고 거의 유일하게 ‘매일신보’만 남았기에 총독부 기관지지만 일제강점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신문은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이다. 워낙 오래된 것이기에 만지면 부스러진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마이크로필름으로 볼 수 있었다. 한데 1980년대에 마이크로필름은 사진 인화지로만 출력할 수 있었고, 그 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몇 번 이용한 적이 있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감히 출력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신문이 영인본이 되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비싸 개인이 소장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부산대학교에 부임한 이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즉시 ‘매일신보’ 영인본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출을 신청했더니 안됐다. 담당사서에게 물었더니 이게 정기간행물이라서 대출이 안된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신문은 1세기 전의 것이고 이미 영인본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사료가 되었다는 것인데, 무슨 정기간행물이냐? 사리를 들어 따졌지만, 그 어린 사서는 그런 말씀일랑 도서관장님한테 가서 하세요! 그것으로 끝이다. 도서관장이라니! 도서관장에게 말을 하면 물론 빌려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꼴인가? 나는 지인을 통해 서울의 모 대학 도서관에서 ‘매일신보’를 빌려 연구에 참고했다.

도서관은 책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어서 존재하는 곳이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서관은 필요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귀중한 책의 복사를 허락하지 않는 원칙은 이해가 간다. 그럴 수 있다. 귀중한 도서를 마구 복사하다가는 원본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번 복사한다고 해서 원본이 아주 못 쓰게 되지는 않는다. 스캔을 한 디지털 자료든, 사진이든, 아니면 종이로 복사한 것이든, 복제본을 만들어두면 된다. 모든 자료가 디지털화되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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