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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되거나 서점서 팔지 않는 책
빌려 보고서도 꼭 갖고 싶은 책
어렵사리 발견해 주문 넣고 나면
흡사 초등시절 소풍 기다리는 설렘
앞서 보수동 헌책방 골목 이야기를 했는데 이곳을 드나든 것은, 대학 다닐 때부터다. 나이가 꽤나 든 분이 하는 골목 초입의 작은 가게에는 약간의 한장본(韓裝本) 고서, 일제강점기 세창서관 등에서 나온 연활자본 책, 한의서 등을 팔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지금 연구실 한 귀퉁이에 있는(거의 한 번도 보지 않은), <통감절요> 언해본, 사서(四書) 언해본을 구입했다. 서울로 가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있는 대학에 부임한 뒤 다시 책방 골목을 찾았을 때 그 영감님은 가게에 없었다. 아마도 돌아가셨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가게도 지금은 예전에 팔던 책을 팔지 않는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고서라고 할 만한 책을 파는 곳은 단 한 곳만 남았을 뿐이다.
헌책방에 자주 들르고 거기에선 무언지는 모르지만 어떤 편안함도 느낀다. 물론 그렇다 해서 새 책을 파는 보통의 서점이 싫은 것은 아니다. 서울 살 때 광화문의 교보문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는 곳이었다. 책도 사고,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하면서 주말을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부산에도 세계 제일이라고 선전하는 백화점 안에 교보문고가 있어 종종 들러 책을 고른다. 다만 헌책방에 들렀을 때처럼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책과 서점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인 호감을 느끼지만, 이상하게도 인터넷 서점에 대해서는 별로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경우는 세 번 정도다. 이태준이 책이란 글자만은 ‘책’이 아니라, ‘冊’으로 쓰고 싶다고 했던가?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을 많이 구입하면 할인폭도 크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그것에 마음이 당기지는 않는다. 아마 나도 그런 심정이어서 책은 내가 직접 보고 골라야 한다는 낡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서(新書)의 경우, 책을 펼쳐 목차를 보고 전체를 거칠게 훑어본 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가, 문장이 얼마나 치밀한가 등을 살펴본다. 고전급에 해당하는, 너무나 잘 알려진 책의 번역본이라면, 뒤에 충실한 해제와 주해가 있는가 등을 본다. 본문은 얼마나 잘 짜였는가, 읽기 편한가, 도판은 정교한가, 적절한 위치에 있는가, 종이는 어떤가 등을 살핀다. 잉크 냄새도 맡아본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책이면 정말 좋은 책이다.
인터넷 서점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내 손에 떨어지기 전에는 그것이 과연 내가 바라는 책인지 아닌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한국에는 믿을 만한 서평 잡지가 없기 때문에 신문의 신간 소개 외에는 달리 책에 관한 충실한 정보를 얻을 곳도 마땅치 않다. 또 그 신문 서평에는 부실한 것이 허다하다. 인터넷 서점은 책 표지의 사진을 싣고 있고, 목차, 본문의 몇 쪽을 맛보기 삼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직접 책을 보고 뒤적이면서 판단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서점이 생긴 이후로도 나는 학교 앞의 서점에서 책을 사고, 또 주문한다. 주문한 책이 오면 오가는 길에 들러서 확인한다. 책이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하는 동안 서점 주인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또 서가에 꽂힌 책을 찬찬히 훑어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얼굴이 익은 주인에게는 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부탁을 할 수도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는 그 친절한 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인터넷 서점이 아니라 인터넷 헌책방이다. 요즘은 헌책방도 발전을 거듭해 충실한 목록을 갖추고 있고 인터넷에 그 목록을 제공한다. 또 여러 인터넷 헌책방을 동시에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어 개별 사이트를 방문할 필요도 없다.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을 들르는 것처럼 인터넷 헌책방을 들르는 것은 아니다. 신간이지만 절판된 책이나 이미 나온 지 오래라 오프라인 서점에서 아예 팔지 않는 경우다. 이건 이미 아는 책이라는 말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지만, 빌려 보고서도 꼭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
예컨대 E H 카의 <바쿠닌 평전>(박순식 옮김, 종로서적)이 그런 경우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뒤 한 권을 구입하려 했지만, 절판된 지 오래다. 더욱이 이 책을 낸 종로서적 역시 없어진 지 한참이다. 인터넷 헌책방을 뒤졌으나 없다. 약 1년 동안 이따금 확인해 보니, 어느 날 한 권이 나왔다. 즉시 주문해 손에 넣은 것은 물론이다. 한데 이 책은 활자가 너무 작아서 불만이었는데, 연전에 <미하일 바쿠닌>이란 제목으로 새 번역이 나왔다(이태규 옮김, 이매진, 2012). 활자도 크고 편집도 좋아 읽기가 훨씬 편하다.
이렇게 해서 구한 책이 더러 있다. 약간 오래된 아나키즘에 관한 <탈환> 같은 책도 모두 인터넷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 전공과 관련된 책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장지연의 문집 <위암문고>(국사편찬위원회, 1956)의 복사본은 연보 부분의 몇 페이지가 빠져 있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원본 자체가 파본인 것이다. 역시 인터넷 헌책방에서 깨끗한 책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지만 <위암문고>는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다.
원래 <위암문고>의 대본이 된 원본 <위암문고>의 연보에는 장지연의 친일 사실이 명백히 실려 있건만, 그 연보를 싣지 않고 다른 엉뚱한 연보를 실었던 것이다. 이렇게 문헌을 변개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앞으로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에서 2004년 출간한 <위암 장지연 서간집>(3책)은 장지연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자료인데, 일반 판매를 하지 않아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 헌책방에는 혹시 있을까 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파는 곳이 있다. 아마도 인터넷 헌책방을 검색할 수 없었다면, 이 책들을 구하는 데 아주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언제나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책을 손에 넣을 확률은 대단히 낮다. 그러니 자주 들러 책이 나왔는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책이 있을 경우 주문을 넣고 흡사 옛날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나 자신을 보고 하도 우스꽝스러워 혼자 슬며시 웃곤 한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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