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안철환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지만 입추가 며칠 안 남았다. 입추가 되면 김장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여름의 복판에서 김장 농사 준비라니

세월유수를 실감한다. 빠른 세월이 야속하지만 맛있는 김장김치를 떠올리면 가을 농사 재미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겹쳤지만 입추 다음에 꼭 말복이 온다. 가을이 왔는데 그 뒤에 말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밭에 여름 벌레들이 많다는 뜻이다. 벌레들이 도사리고 있는 밭에 배추 씨를 심으면 그놈들 먹으라고 주는 것과 다름없다. 입추 다음 절기는 처서(8월 하순경). 이때가 되면 ‘모기 바늘이 꼬부라지는 찬바람이 분다.’ 바야흐로 여름 벌레들이 물러난다는 뜻이다. 처서 지나 배추 씨를 뿌리면 벌레 피해를 덜 보고 수월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늦게 심기 때문에 배추 속이 덜 찬다. 하지만 속이 덜 찬 배추로 담근 김치가 오래가고 맛이 깊다. 속이 차지 않은 조선 배추의 깊은 맛을 안 다음부터 아내도 더 이상 속 찬 배추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철이 지나면 풀밭으로 변한 밭을 보고 아예 농사를 작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뿌려야 거둘 수 있다.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풀 매고 김장 농사를 지으면 된다. 사실 도시농부의 여름 농사는 일은 고되면서 면적이 작은 탓에 군것질 농사가 대부분이다. 반면 김장 농사는 풀이 적은 때라 상대적으로 덜 고되고 작은 면적에서도 가능한 자급농사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배추 농사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벌레들 때문이다. 완전히 삭아서 흙냄새 나는 거름을 주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덜 삭아 냄새가 나는 거름은 벌레를 불러들인다. 흙을 갈 땐 깊이 갈지 않는 것이 좋다. 호미로 풀만 매주고 거름은 흙 속에 묻히지 않도록 땅 위에서 흙과 섞어주기만 한다. 밭을 깊이 갈면 흙이 말라 가뭄을 타고 흙 속의 거름은 벌레를 불러들인다.

어려운 배추 농사지만 밥 먹듯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상품성 높은 속이 꽉 찬 배추보다 작고 못 생기고 벌레가 먹은 배추가 더 맛있고 몸에 좋다는 생각으로 키우면 아주 쉽다. 자급을 목적으로 하는 도시농부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