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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강원도가 골프장 건설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운영 중인 골프장만도 50개인데, 21개를 짓고 있고, 앞으로 13개가 더 지어질 계획이다. 골프장 총면적은 여의도의 32배에 달한다. 강원도에 골프장 건설 붐이 시작된 것은 2008년 정부가 골프장 건설규제를 대폭 완화한 데다 강원~춘천 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고, 경기도 골프장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은 인허가와의 싸움이다. 사업주는 부실덩어리 사전영향평가 보고서를 제출했고, 주민들에게는 금품을 살포하거나 농장을 만든다고 속여 토지를 매수했다. 홍천 어느 마을 이장은 “이 지역에는 희귀 동식물이 있는데, 잘 살펴보면 기린도 있고, 아나콘다도 본 사람이 있다. 제가 직접 조사해보려 했는데 골프장 싸움이 너무 바빠 확인을 못했다”고 말한다.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꼬집은 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유기농단지인 이 마을에서는 지금 2개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겨울 60세가 넘은 8개 마을 주민들이 강원도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73일이 넘었다(8월1일 기준). 매일같이 진행되는 고된 농성 중에 주민 1명이 생명을 잃었다. 골프장 난개발로 고통받는 강원도를 살리기 위한 생명버스는 10차례나 진행됐다. 지난 7~8년 동안 주민들이 강원도청, 지방환경청, 산림청, 국회, 환경부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지만, 단 한 건의 골프장 사업도 취소되지 않았다. 이들의 원래 직업은 농민이었다.
강원 강릉시 구정면 일대에 들어설 골프장의 인허가 취소 요구하는 노숙 농성 (출처 : 경향DB)
이 땅에는 골프장을 반대하는 강원도민들만이 아니라 생업을 내팽개치고 길에서 농성 중인 농민들이 많다. 제주도 강정에서는 감귤 농사를 지어야 하고, 765㎸ 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들도 논밭으로 돌아가야 하고, 두물머리는 가을에 반드시 유기농산물을 수확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농사짓는’ 이들의 고통과 절규를 문제로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다. 이들을 투명인간처럼 대한다. 이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의 범주는 골프장 좀 짓고, 해군기지 짓고, 핵발전소 짓고, 송전탑 세우고, 4대강 공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공사하는’ 사람들이다. 또 상위 2~3%로 골프 정도는 쳐서 소비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국민이다. 그런 부자들을 위해 골프장 개별소비세 정도는 인하해 주는 것이 정부의 도리라고 여기는 듯하다.
드디어 이 예의 없는 정권을 심판할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 정부가 너무나 혹독했기에 국민으로 대접받지 못한 민초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정권교체는 당연한 수순이겠으나 참여정부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도 있다. 지지했던 권력으로부터 배반당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 강원도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골프장 전면 재검토’를 내건 최문순 도지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도지사를 만나러 간 주민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경찰서에 연행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니 더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민주통합당 대선주자들은 지금 당장 강원도로 가야 한다.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있는 지역에서, 즉 자신들이 지킬 수 있고 할 수 있는 곳에서조차 변화를 못 이끌어내면, 국민들이 민주당 후보들의 공약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민주당 대권 후보라면 적어도 강원도 최대 현안인 골프장 문제 정도는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골프를 꽤나 좋아하는 높은 분들이 계셨고, 경제대책으로 골프장 확대정책을 펼친 과오가 있었다. 전국의 골프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이고, 골프장은 지역 세수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방세 체납 골프장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강원도의 힘은 7년째 묵묵히 청정자연을 지키며, 농민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골프장 반대 주민들에게 있다. 이제는 제발 ‘골프장’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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