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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몇 년 전부터 섬에서부터 내륙 산촌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토종 종자를 찾아 다녔다. 토종 종자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특히 소득 위주로 기계와 시설 농사가 발달한 지역을 가면 눈 씻고 찾아도 토종 종자 보기가 어렵다. 한번은 남 몰래 토종 옥수수를 심는 농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지역엔 상품성이 뛰어난 잡종 옥수수가 대세여서 토종 옥수수를 더욱 보기가 어려웠다. 옥수수는 다른 종자와 아주 잘 섞이는 남의꽃가루받이 식물이어서 토종은 자칫 잡종 옥수수의 상품성을 떨어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도 되지 않는 것을 왜 남 몰래 심습니까?” 뭔가 특별한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종자를 어떻게 내 대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토종씨앗 전시회 ㅣ 출처:경향DB
토종을 찾으러 다니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종을 간직하고 있는 분들은 대개 할머니들인 여성 농부님이라는 거다. 토종 수집단을 이끌고 있는 안완식 박사는 토종 은행을 설립하는 데 앞장선 분인데 정년퇴임 후에도 토종을 수집하러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런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토종은 여성이 지켜왔다고.
토종을 지켜온 할머니들은 우리를 보면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실 수가 없다. 안 박사는 “돈의 가치보다 생명의 가치, 전통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돈이 되지 않는다고 조상님이 물려주신 종자를 나의 대에서 끊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옛날 농부들은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를 먹지 않고 베고 죽는다고 했다(農夫餓死 枕厥種子). 조상들이 배고프다고 종자를 먹어버렸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고 크고 양이 많은 상품성 뛰어난 것만을 찾고 있는 사이에 불임 종자가 온 세상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 결과 씨를 받는 농부도 우리 곁을 떠났다. 험난한 세상에 등불이 될 씨종자 농부가 그리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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