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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은 타국이다
빨간 벽돌을 빻아 소꿉놀이하던 아이들이
국경 너머를 기웃거린다
가난은 엄지와 검지만큼 가까워,
배를 채우지 않아도 저녁은 금방 갔다
우물은 퍼도 퍼도 줄지 않았다
아이들은 낡은 책을 돌려 읽거나
타이어가 닳은 자전거처럼 놀았다
엄마보다 아줌마를 보는 날이 더 많았고
쌀집 아저씨는 쌀을 팔아 먹을 걸 샀다
달력 뒷면에 태양을 그려도
방은 환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두운 방에서 공과금을 내듯
한 달씩 컸다
누군가 국경을 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며칠째 기척 없는 옆집에 경찰이 다녀갔다
둥근 딱지에 찍힌 별이 가짜란 걸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최은묵(1967~)
“길 건너편”은 가진 자들의, 이쪽은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세상이다. “타국”이라는 말에선 부유와 여유 외에도 낯섦, 차별, 차이가 느껴진다. 은근한 멸시의 눈초리가 길을 건넌다. 아이들에게 길 건너는 출입금지 구역이다. “빨간 벽돌을 빻아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길을 건너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도 기웃거린다. 늘 배고픈 아이들은 우물물로 배를 채우고 겨우 잠이 든다. 몇 푼 되지 않는 공과금조차 내지 못하는 빈한한 생활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 굶어죽을 것 같아 엄마는 돈을 벌러 떠난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아이는 봉지쌀을 사다 밥을 짓는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음습한 방에서 착한 아이들은 “낡은 책을 돌려 읽”는다. 공부만이 희망이다. “국경”이라는 말에선 이 땅에서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한 누군가 경계를 넘는다. 정 많은 동네일수록 비밀이란 없다. 독감처럼 소문이 퍼진다. 가난은 정말 ‘죄’가 아닐까.
김정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