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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에 기댄 안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릴 때, 문득
내 풍경이 누군가에게 등을 기대고 있는 것 같아
살며시 눈이 감겼다
언젠가부터 앙상한 풍경 속에
당신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억지로 기억해 낸 체취에 기대어 잠들곤 했는데
빗소리에 놀라 눈뜨면
체취는 항상 말끔하게 씻겨져 있었다
장마의 밤이었다
체취가 젖지 않게 마음속에 코를 닮은 오두막을 짓고
창을 활짝 열어 놓았다
며칠을 기다려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아
창밖으로 목을 빼내 킁킁거렸다
콧등으로 빗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손석호(1965~)
안경을 흔들면 풍경이 흔들린다. 풍경이 흔들리면 삶 자체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내 삶이 떠난 당신을 어찌할 수 없어 “살며시 눈”을 감는다. 마음은 늘 갈대밭을 헤맨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오감(五感)을 통한다. 안타깝게도 당신에 대한 기억은 후각만 남아 있다.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체취도 “억지로 기억해 낸”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점점 앙상하게 말라간다.
당신의 “체취에 기대” 잠이 든다. 잠들어야 겨우 당신을 만날 수 있다. 당신 없는 세상에 깨어 있는 건 고통이다. 비 오는 날 떠난 당신, “장마의 밤”에 그리움이 사무치는 이유다. 사랑하는 당신과 “오두막을 짓고” 오순도순 살고 싶었지만 이젠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창을 활짝 열”고 기다려도 당신은 내 꿈에 찾아오지 않는다. 당신에 등 기댄 풍경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앞이 흐려진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김정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