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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후,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피아노 선율에 맞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동체에 꾸려진 작은 합창단의 합창이다. 10명이 채 안되는 합창단 참여자는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모인 것은 두 달 전, 처음 수줍어하며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던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노래를 부른다. 서투르게나마 화음도 맞춘다. 주말인데도 결석하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참여자의 만족도도 높다. 노래를 하다 보면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마음의 상처들이 알게 모르게 치유된다는 것이다. 특히 10대 아들과 같이 합창단에 참여하는 40대 엄마는 “사춘기가 되면서 멀어져 가던 아이와 함께 화음을 맞추며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자리”라며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매주 화요일 낮, 공동체에서는 드로잉과 수채화 교실이 열린다. 여기에는 그림에 재능이 있으나 이를 펼치지 못한 사람뿐 아니라 재능이 없어 그림 그릴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람도 있다. 처음엔 선 하나 똑바로 긋지 못하던 사람들이 불과 두세 달 뒤에 그린 그림을 보면 경이롭다. 전시를 하고 엽서를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합창단의 노래와 드로잉, 수채화반의 그림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고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재능이 없는 탓이 아니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예술 프로그램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것은 사진이다. 사진교실의 출발은 그리 떳떳하지 못했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만으로는 월세도 낼 수 없으니 뭔가 돈 되는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집집마다 DSLR 카메라가 보급되고, 모두가 스마트폰 카메라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는 세상 아닌가.

시작은 초라해도 멘토로 모여든 작가들은 대충대충 하지 않았다. 사진 찍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진의 기본 원리에서 작품 사진에 이르기까지를 열정적으로 지도했다. 여기에다 인문학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프로그램은 알게 모르게 이들의 사진에 깊이를 더했다. 10개월여의 과정을 마치며 치르는 졸업 전시회는 참여자들의 사진을 몇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사진을 공부한 이들이 전시회를 열자 사람들이 놀랐다. 사진 공부 1년도 안되는 이들의 작품이 이렇게 좋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새해, 누구나 그렇듯이 공동체도 꿈을 꾼다. 역시 주류는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질적·양적으로 드높이고 이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돈이 되지 않아 포기했고, 도서관이나 백화점 문화교실에서는 인기가 없어 할 수 없는, 공동체만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편익과 경제성만 따지는 세상의 풍토와 상관없이 힘들어도 뚜벅뚜벅 길 걷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더하고 싶은 게 있다. 기왕 시작한 예술 프로그램을 보다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음악이나 사진을 포함한 미술, 영화, 건축, 문학, 목공 등을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연주하거나 제작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인문학 공동체에서 하는 예술 프로그램이 쉬울 리 없다. 인적 자원이 열악한데다 여건도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시 창작교실은 문을 열었다 1년도 되지 않아 문을 닫았고, 드로잉이나 수채화도 몇 년째 작은 동아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 집은 내가 짓는다는 것을 모토로 문을 연 건축교실도 3년이 지나도록 걸음마 단계다. 합창단도 이제 겨우 시작했고, 재즈교실은 몇 년째 계획만 하고 있다. 초창기에 제법 인기를 모았던 목공교실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한 차례 시도해봤으나 다시 열지 못한 프로그램의 목록에는 영화 만들기도 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갈수록 강고해지는 믿음은 있다. 예술 프로그램이 인문학 공동체의 취지와 배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썩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빼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교동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마련한 <놀이의 기술 - 고3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에 던져지는 질문은 예술을 향한 질문에도 유효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도 제대로 못 먹던 나라가 이 정도나마 살게 된 건 인문학이나 예술 덕분이 아니다. 돈벌이다. 이를 위한 부지런함과 실용 정신이다. 창조경제를 말하는 이들은 인문학과 예술도 돈벌이가 된다고 하지만, 기실은 돈벌이를 향한 마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쓸모도 없이 난해한 고전을 파고들거나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시나 소설을 읽으며 돈을 가볍게 여기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그렇듯이 예술에도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 저항이 담겨 있다.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창조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능력도 길러준다. 예술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 못지않게 세상과 사람을 더 진실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예술은 가장 빼어난 현실 비평이자 최고의 인문학이기도 하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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