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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절에서는 마주치는 이도 있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내려놓으려는지 어깨도 유난히 처져 보인다. 멀리 우뚝한 일주문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지하로 푹푹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경주 가는 길. 김천의 직지사 사하촌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교실을 벗어난 이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어울려 경내를 잠깐 거닐었다. 탑으로 가는 눈길을 빼앗아가는 단풍잎들. 아아, 벌써 40년이라니! 희끗희끗 영감으로 넘어가는 후줄근한 모습들이었지만 이름을 대면 졸업앨범에서의 앳된 얼굴들이 그냥 훅, 튀어나왔다. 흥건한 기분으로 신라의 달밤을 떠들썩하게 건넜다.

ⓒ최영민

골프, 관광 조와 헤어져 삼릉에서 남산 금오봉에 올랐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심상찮은 기운이더니 실제 바위 바깥으로 외출한 부처들도 있다. 한 가족이 소풍을 나왔는가. 꼬마가 가파른 경사에서 외친다. 고만 집에 가자. 경상도 사투리의 투정을, 이 자슥아 이 길 아니고는 집에 갈 수 없데이, 다독이는 젊은 엄마의 슬기로운 거짓말은 이 지방 특유의 억양이다. 여기가 경주이고, 이곳이 남산이라 그런지 집이라는 말은 졸업과 얽히며 사무치게 귀에 들어왔다. 천년이 퇴적된 경쾌한 풍경을 가리키는 바위에 철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줄기와 가지, 어린 나뭇잎은 희한한 무늬를 연출해낸다. 사람 인(人), 큰 대(大), 마음 심(心)이 함께 어울렸다. 바람에 불어 철쭉이 흔들리면 따라서 일렁이는 오묘한 글자들 속에 철쭉이 전하는 큰 소식이 있는 듯!

어제부터 내심 떠올리며 공글린 꽃이 있으니 동래엉겅퀴이다. 몇해 전 상주 황금산 입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름에 특별하게 꽂힌 건 엉겅퀴 앞에 얹힌 두 글자가 바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엉겅퀴는 동래(東萊)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 부산의 꽃동무가 이기대 해변에 한창이라며 동래엉겅퀴를 보내주었다. 50주년에도 모두들 저 동래엉겅퀴처럼 싱싱하게 모일 수 있을까. 이래저래 동래엉겅퀴와 얽히고설킨 하루였다. 동래엉겅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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