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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석에 앉아 노자강독을 듣는다. 오늘은 제50장이다. 대강의 뜻이야 번역된 책을 참조하면 되겠지만 한자의 뿌리까지 더듬자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산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중간의 대목에 얄팍한 마음이 실린다. 人之生(인지생), 動之死地(동지사지). 사람의 삶은 죽을 곳으로 움직여 가는 것. 그중 세 글자에 눈이 꽂혔다. 지금까지 그 전모를 모른 채 나도 인생이란 말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 어느새 그것의 반 고비를 지난 마당에 가끔 그 어디로 떨어진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런 마당에 갈 지(之)를 사이에 끼우니 남은 인생이 어디로 급박하게 굴러간다는 촉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도 같았다. 한 글자 차이로 인생과 인지생은 그 어감이 이렇게 퍽 다르다. 난해한 수업을 마치고 취해서 귀가할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지생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침불시(寢不尸)라고 하셨던가. 잘 때도 시체처럼 똑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걷는 듯이 잤다. 사나운 꿈을 꾸기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밤을 건너고 주말이 오면 또 마음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 몸을 움직여서 가는 곳은 산.
시원하게 앞으로 달린다. 이 도로를 만드는 데, 이 다리를 놓은 데 땀 한 방울 보탠 적 없지만 나를 안 받아준 적은 없다. 그렇게 해서 장보고대교를 건너는데 좌우에서 급한 해류가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완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근처 어느 야트막한 곳. 저기는 바다이고 여기는 산기슭이다. 그 사이에 섬이 형님처럼 앉아 있다.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이젠 달력도 얇아졌다. 두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간당간당하다. 풍부했던 햇살도 졸아드는 저녁이다. 모든 것들이 움직이며 그 어디로 넘어가는 중.
올해의 꽃들이 모두 사라졌군, 기대를 접으려는 때 길가에 어엿하게 핀 꽃이 있다. 남녘이라서 아직도 가능한 자주쓴풀이다. 미라처럼 쓸쓸하게 꽃대 위에 저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피뢰침처럼 날카로운 잎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혀를 찌르는 쓴맛이 다리를 다시 건널 때까지 입에 감돌았다. 그것의 맛도 이렇게 쓰다! 새삼 깨우쳐주는 자주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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