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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든 밤 영화에 빠진 내게 아내는 불쑥 노트북을 내밀었다. 뭐야, 했는데 아내의 눈시울이 뜨거웠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동영상에선 “해방이화, 총장퇴진”의 앳된 함성이 울려퍼졌다. 학생은 죄 얼굴을 가렸는데 옷차림은 발랄했고 합창곡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다른 동영상에선 녹색 머플러를 두른 교수와 복면을 쓴 학생이 이산가족처럼 포옹하고 있었다. 그들 중 보라색 염색을 하고 눈가를 닦는 교수를 가리키며 아내는 울먹였다. “저분이 내 은사야.” 86일간의 이대 본관 점거농성은 그렇게 꼬리로 몸통을 흔들었다.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규탄”은 최순실 게이트의 뇌관으로 전 국민의 공분을 깨웠다.

아울러 이대 학생 시위는 ‘느린 민주주의’라는 쟁점을 남겼다. 이 작명은 시위대가 학교나 기자와 소통할 때 지도부나 대변인 없이 참여자의 전체 토론인 ‘만민공동회’의 서면 문답을 고수하면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주류 언론과 일부 전문가는 ‘느린 민주주의’를 “지도부 부재 난맥상”과 “타협점 못 찾고 표류”로 표현하며 사태 해결의 걸림돌로 비판했다.

하나 ‘느린 민주주의’는 그 어떤 대의제도 못했던 ‘민주주의의 빠른 해결’을 경험했다. 미래라이프대학 추진은 폐지됐고 총장은 사퇴했으며 최순실은 국민 앞에 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 시위대의 ‘외부세력 배제’가 사회적 연대의 포기냐 새로운 운동 전략의 성공이냐라는 논쟁이 뒤따랐다. 나는 이런 양도일단의 해석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시민 시위를 ‘불순분자의 사주’로 몰아 탄압하고 민형사 소송을 남발하는 공권력에 맞서 어떤 방어 수단을 선택할지가 이대 학생 시위의 고민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위자의 개인 신상이 털리지 않게 보호하여 다수의 참여를 유지하려는 선택과, 희생을 감수하는 소수의 선도적 행동으로 저만치 대오 앞으로 나아가는 제의(祭儀)적 선택은 다른 방식을 낳는다. 뒤의 선택이 각성된 정치적 주체에 의해 사회적 구조를 한꺼번에 문제로 삼는 선동의 언어이자 외부적 목표 지향이라면, 앞의 선택은 시위 참여자의 집단 무의식을 사회심리적 구조로 묶어내는 공감의 언어이자 내부적 응집 지향이다.

이 점에서 이대 사태는 정당성의 문제로 촉발됐지만 학생 시위의 조직화는 동기상의 문제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즉 이대 사태의 구조적 해법을 찾는 변증법적 사고와 이대 학생 시위대가 선택한 자급자족의 심리는 연결돼 있지만 따로 읽어야 한다. 후자에 주목한다면 이대 학생 시위가 던진 질문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로 선출된 대표가 도리어 선출한 국민을 무시하는 실태에 대한 부정이다. 51%가 49%를 배제하는 현실에 대한 반대다. 또한 그 민주주의가 위촉한 전문가의 위선에 대한 불신이다. 4대강과 가습기살균제와 농민 백남기 사망진단서까지 엄청난 결과를 불러내고도 그 폐해와 무관하게 고결한 전문가로 사는 그들에 대한 거부다.

이것이 우리가 물려준 대의 민주주의라면 이대 학생 시위는 무엇을 포기했거나 어떤 전략을 성공시켰기보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과 착오로 되풀이하면서 미완의 질문을 남긴 것이다. 이 질문은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진순 선생의 신간 <듣도 보도 못한 정치>가 소개한 직접 민주주의의 사례들에 86일간의 이대 학생 시위를 추가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생활 민주주의를 탐구하고 실험해야 할 때다. 특히나 이대 학생 시위는 ‘경쟁을 내면화한 각자도생의 수저 세대’로 대상화됐던 청년의 몸부림이었기에 여기에 응답하는 일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영욕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부채이자 의무다.

그날 밤 나는 영화 <아수라>를 보고 있었다. 정치인과 검찰과 경찰과 조폭과 용병이 서로 물고 뜯다가 장례식장에 모여 모두가 죽는 결말을 보긴 했지만 중간에 아내가 들이민 동영상을 보느라 나중에 다시 봤다.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나기 시작한 그들의 물고 뜯는 아수라장을 보면서 영화보다 더 소름이 끼쳤지만, ‘기승전검찰’로 귀결되는 이 나라의 대의 민주주의가 또 얼마나 허망할지를 지켜보는 시청자 국민의 노릇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스란히 숙제로 남는다. 이제라도 ‘민주화’ 훈장부터 떼고 ‘산업화’ 훈장도 마저 떼놓고 ‘듣도 보도 못한 민주주의’에 착수해야 내 앞에 놓인 그 숙제를 비로소 풀 수 있을 것 같다.

내 청춘의 한때 ‘한 사람의 열 걸음’과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놓고 친구들과 갑론을박을 벌였던 적이 있다. 어느샌가 ‘한 사람의 열 걸음’은 선한 의지든 악한 음모든 그것이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명예로든 기어코 나쁜 세상을 만든다고 알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착한 대표자와 봉사하는 전문가가 그래도 세상을 좋게 만든다고 여겼던 편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게 아니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위한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도 착오도 해본 적 없이 ‘한 사람의 열 걸음’에 기대 묻어가려는 심보로는 이 아수라장을 벗어날 수 없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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