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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구원파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해 현수막을 내걸면서 다시 회자된 이 말은 관권선거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1992년 12월11일.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이 지역의 정부 기관장들이 모였다. 인터넷에서 참석자들을 찾아보니 김기춘 전 법무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용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시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이 모였다고 돼 있다.

발언내용을 봤다. “부산·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의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기춘 전 법무장관은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들이 자리를 마치며 함께 외친 말이 “우리가 남이가”라고 한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선거운동을 하자고 한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당시 이들이 뭐라고 사과했는지 궁금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여당은 “도청은 나쁜 일”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여당의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에서 논점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데 탁월한 재주를 발휘한 것이다.

14일 만에 물러나는 문창극


이 사건을 떠올린 이유는 일부에서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의 사퇴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문 전 지명자가 진실의 여과장치도 없이 선동과 거짓을 신속하게 공유하는 SNS 탓에 ‘마녀사냥’ ‘인민재판’을 당했다는 주장 때문에.

SNS의 전파력이 빠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올려 빠르게 전파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NS가 빠르게 전파하는 것이 거짓뿐인가. 진실은 전달하지 않나. 폭로는 전달하지만 해명은 전달하지 않는 공간이 SNS인가.

문 전 지명자의 모습은 국민 모두가 지켜봤다. 하지만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문제가 된 그의 발언을 처음 보도한 KBS 취재진이 “한일합방과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은 어떤 취지입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여기서 대답할 수 없고 청문회에서 답하겠습니다”라며 대답하지 않았다. SNS에 그의 해명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가 해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NS는 사람들의 의사전달 수단일 뿐이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정보를 퍼뜨리는 주체는 사람이지, SNS가 아니다. 왜 애꿎은 SNS를 탓하나.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신문 시장은 자본력을 앞세운 보수 언론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방송은 이명박 정부 이후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사장을 맡고 있다. 여기에 보수 언론사들의 자회사인 종편이 만들어져 보수적인 뉴스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SNS가 없다면….

혹시 SNS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나서는 건 아닐까. 설마 그런 나라가 있을까. 그런데 있다.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다. 올해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웹사이트든 통신당국의 명령으로 4시간 이내에 차단시킬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또 터키 국내에서 트위터와 유튜브 서버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트위터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한국 정부도 터키를 따라 하는 것 아닐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어 더욱 불안하다.


김석 비즈n라이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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