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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마감 후]젊은 그들

opinionX 2013. 2. 14. 10:37

김광호 정치부 차장


 

“난 알고 있어요, 난 서민이니까. 혁명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서민이라는 건 변변찮은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요. 혁명이란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의 이름이 바뀔 뿐이잖아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기즈키를 향해 여자친구 미도리는 항변하듯 말한다. 1960년대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과 그 이면의 ‘상실’이라는 두 단어로 집약된다. 무라카미는 이 같은 일본 전후세대의 모순된 정서를 내밀하게 포착하면서 세계적 공감을 얻었다. 1977년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에서의 방황처럼 젊은 세대의 세상에 대한 패배감은 공통분모였던 때문이다.


실상 정치의 변화라는 건 어쩌면 미도리의 토로처럼 보통사람들에겐 관청 이름이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일지 모른다. 지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행정안전부냐, 안전행정부냐 하는 논란처럼 그들에겐 낯선 이야기일 뿐이다. 안전이 먼저냐, 행정이 먼저냐에 따라 인사권을 쥔 1차관을 어느 기관이 갖게 되는 따위의 이야기는 정말 관료들의 권한 논리일 뿐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기이하다할 정도로 폭발한 ‘정치적 열정’은 허망한 것일 뿐일까. 


대선을 전후한 언론 보도나 우리 사회 분위기를 보면 마치 ‘세대 전쟁’의 강을 건너온 듯하다. 정치적 무관심 타파라는 초심을 잊고 젊은 표심이 마치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의미 부여의 질주를 한 언론 책임이 물론 크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협곡 같은 틈이 가로놓여 있다는 의식들이 중요한 부분일 게다.


대선 후 20·30대들은 ‘멘붕’ 등 ‘집단적 루저’라도 된 듯한 시선들 속에 놓여 있다.


실상 ‘88만원 세대’나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와 같이 이들 세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진정 이들을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고도성장기에 승차하면서 ‘하면 된다’는 신화를 훈장처럼 머리에 인 부모 세대 앞에서 “아프다”는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함일 것이다. 앞 세대는 상상도 못할 경쟁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들의 지금 실패는 구조적 원인에 있기보다는 개인의 부족함이나 무능으로 돌아오기 일쑤인 때문이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1981년 내놓은 ‘1980년대 청년 전망’ 보고서를 보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보고서는 “다가오는 1980년대에 젊은이들의 경험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결핍, 실업, 불완전 고용, 건강의 위협, 존재 불안, 생존 투쟁, 실용주의, 심지어는 연명의 문제나 생존 같은 개념들로 점철될 것이다. 1980년대는 만성적인 경제적 불확실성이라는 구체적이고 구조적 위기와 심지어는 곤궁으로 만연한 새로운 세대가 도래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젊은 세대의 세상과의 불화는 불완전한 신자유주의 성장 속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경향신문DB)


이런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변화’에 대한 갈구다.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해한 벽 앞에 선 자들의 반응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좌절될 때 남는 것은 미도리와 같은 냉소뿐일 터다. 세상에 대한, 궁극적으로 자신에 대한 냉소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냉소가 “정치적 무관심은 ‘공동의 문제에 대한 사적인 해결’”이란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E P Thompson)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와 삶을 조금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냉소는 희망조차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다.


혹 지난 대선을 겪으면서, 세대 전쟁의 패자로 낙인찍히면서 우리 젊은 세대는 지금 냉소를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극복하는 출발점은 ‘과거의 덫에 갇히지 않기’가 아닐까 싶다. 바로 앞 세대의 ‘하면 된다’에 주눅들지도, ‘졌다’는 자조에 휘둘리지도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다음을, 또 그 다음을 향해 지난 겨울의 열정들을 다시 단단히 가슴속에 묶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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