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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오 | 농부




결혼하고 함께 산 지 두 달쯤 지난 때였다. 어느 저녁,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던 남편이 의자에 앉은 자세 그대로 벌렁 자빠졌다. 정신을 잃고 누워버린 남편은 발뒤꿈치로 바닥을 쿵쿵 치고 손을 바르르 떨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발작은 아무런 조짐도 없이 아무 때나 일어났고 그때마다 남편은 술을 찾아 숨어들었다. 하지만 발작의 기억을 지우고자 들이켠 술이 또 다른 발작을 불렀고, 그 발작이 다시 술을 불렀다. 남편은 술을 먹지 않으면 헛것을 보는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남편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다음날 남편은 자신의 폭행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녀의 얼굴에 남은 시퍼런 멍을 본 남편은 자기를 병원에 집어넣으라고 소리치며 자책했다. 그러고는 다시 손에 술병을 들었다. 결국 남편은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7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녀는 세 번의 임신과 유산을 반복했다.



그녀와 남편은 브로커를 통해서 국제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베트남 하노이의 아만다호텔에서 맞선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스무 명의 베트남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고 남편은 다섯 명의 한국 남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커피숍의 네모난 테이블 한쪽에 네 명의 베트남 여자가 앉았고 맞은편에는 한국 남자 한 사람이 앉았다. 그녀는 네 명의 여자들 중에서 제일 왼쪽에 앉았다. 남자 쪽에는 베트남 여자 브로커가 앉았고 여자들 쪽에는 한국 남자 브로커가 앉았다. 여자 브로커는 마담으로 불렸고 남자 브로커는 사장님으로 불렸다.


마담이 옆의 남자에게 여자들의 이름, 나이, 고향, 가족관계, 학력, 직업 따위가 쓰인 종이를 건네며 여자를 한 사람씩 소개했다. 남자는 종이와 여자 얼굴을 하나하나 대조해가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올리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나직이 ‘팜 티 흐엉’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나머지 세 여자는 일어나서 자리를 비켰고 그녀와 남자가 정면으로 마주보고 앉았다. 그녀는 얼굴이 발개졌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마담이 남자의 이름과 나이를 그녀에게 베트남말로 말했다. “김. 선. 호. 서른여덟 살.” 자신보다 열여섯 살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녀 머리를 지나갔다. 그녀는 남자의 눈을 잠깐 쳐다보았다. 그의 큰 눈은 부드럽고 착해 보였다. 하노이에서 남서쪽으로 100여㎞ 떨어진 고향마을을 떠나오던 날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꼭 착한 사람 만나라고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마담이 그녀에게 말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 수 있어요?” 그녀는 주저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마담이 그녀에게 말했다. “결혼하면 신랑이 베트남 고향집으로 매달 돈을 부쳐주어야 해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담이 그녀의 의사를 한국말로 남자에게 전했다.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는 입이 말랐다. 이번에는 사장이 남자에게 한국말로 길게 말했다. 남자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마담이 그녀에게 남자의 뜻을 간단하게 전했다. “남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대요.” 그녀는 마담에게 남자의 직업을 물었고, 마담은 남자가 슈퍼마켓을 운영한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웃었다. 그녀도 미소를 지었다. 마담이 시키는 대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도 일어났다. 남자가 어정쩡하게 그녀를 품에 안았고 그녀는 어색하게 남자의 품에 안겼다. 마담과 사장이 박수를 쳤다. 그녀는 부끄러웠다. 이틀 후 그녀와 남자는 다른 세 쌍의 신랑·신부와 함께 아만다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3일 만의 결혼이었다. 그로부터 세 달 후 그녀는 한국에 왔다.




남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결혼 전에 이미 남편은 알코올 중독과 발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운영한다던 슈퍼마켓도 시어머니가 읍내 변두리 동네에서 꾸려가는 초라한 구멍가게를 말하는 것이었다. 구멍가게만으로는 도저히 세 식구의 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김 공장에 나갔다. 그녀의 작업은 구워져서 네모나게 잘린 김 조각 열두 장을 얇고 투명한 합성수지 용기에 빠르게 담아서 포장라인으로 넘기는 일이었다. 한자리에 붙어 서서 한시도 딴눈을 팔지 않고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 일이 끝나면 고개를 뒤로 젖힐 수 없을 정도로 목덜미와 어깨가 쑤시고 아팠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일해서 그녀는 7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녀는 그중에 20만원은 베트남 고향집에 보냈고 10만원은 시어머니께 드렸고 40만원은 가족의 생활비로 썼다. 공장 일은 힘들었지만, 일하는 중에는 이런저런 시름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아주 가끔 술이 깨고 정신이 말짱한 날이면 남편은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것만이 남편 구실을 할 수 있는, 혹은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폭풍우 같은 섹스가 지나간 뒤, 남편은 그녀의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아기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잠시 후 남편의 차가운 눈물 방울이 그녀의 뜨거운 젖가슴을 따라 허리로 흘러내렸다. “흐엉, 미안해. 잘 살고 싶었는데….” 그녀는 손으로 남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오빠, 같이 잘 살아요.”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 


세 번째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온 남편은 한동안 술을 먹지 않았다. 헛것을 보지도 않았고 발작도 없었다. 그녀를 때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부엌 식탁에 마주앉은 남편이 그녀에게 말했다. “흐엉,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어.” 남편의 표정은 어두웠다. “넌 아직 젊어. 그만 헤어지자.” 남편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가 없으면 남편은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다. “이혼 안 해요.” 남편의 눈은 초점 없이 흔들렸다. “흐엉, 마음처럼 살 수는 없어.” 그녀 또한 남편 없이는 앞날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우린 헤어지면 안돼요.” 남편의 눈빛이 흐려졌다. “아니야, 지금이 아니면… 널 보내지 못할 거야.” 식탁에 올려놓은 남편의 두 손이 심하게 떨렸다.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고 소주병을 꺼냈다.


가정법원을 다녀온 다음날 아침, 그녀는 김 공장에 출근했다. 그녀는 기름때가 앉은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챙이 짧은 하얀 면 모자를 쓰고 작업라인에 섰다. 서서히 작업라인이 돌아가고 그 속도에 맞춰 네모난 김 조각들이 그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작업대로 향하지 않고 허공을 향했다. 재판정 모습이 그녀 눈에 어른거렸다. 이혼에 동의하느냐는 판사의 질문이 귀에서 왕왕거렸다. 남편의 체념 섞인 대답이 희미하게 들렸다. 목이 메어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작업라인을 지나는 김 위에 뚝뚝 떨어졌다. 네모난 김 조각들이 작업라인에서 밀려나와 작업장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날렸다. 포장라인에 서 있던 반장이 소리쳤다. “흐엉! 똑바로 작업 못해! 저년이 정신이 나갔나.”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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