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쟁여놓은 마스크가 하나둘 떨어지면서 불안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가 수백명씩 늘어나고 설마 했던 사망자가 10여명에 이르는 지금, 마스크는 코로나19 감염을 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예방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언제 잠잠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렸다. 마스크 판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 빠르게 ‘구매하기’를 클릭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웃거린 것도 ‘마스크 대란’을 헤쳐나갈 비법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관련 게시물은 나처럼 마스크 구매에 실패했다는 하소연부터 직접 만드는 마스크 등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었다. 마스크 가격을 갑자기 대거 올려 판매하는 공급업체를 비판하는 게시글도 많았다. 1000원 안팎 하던 마스크값이 4000~5000원을 넘어 1장당 1만원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매한 마스크를 뜯어보니 휴지가 나왔다는 황당 사연도 있었다.

그러다 ‘마스크 나눔’이라는 게시물들이 눈에 띄었다. “대구에 계신 임산부께 마스크 나눔해요” “급한 대로 몇 개라도 나눔 올려요” 등의 제목으로 올라온 이 게시물들은 자신이 확보한 마스크 중 일부를 무료로 내놓는 내용이었다. 대개 대구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섰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이 올린 거였다. 택배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게시물들에는 “따뜻한 마음에 대구 시민들도 잘 이겨낼게요” “저도 작게나마 나눔하겠습니다” 등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게시물과 댓글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선한 영향력’을 활자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한 친구도 생각났다. 친구는 마스크 판매 예정 정보를 친한 이들과 항상 공유한다. 누군가 당장 사용할 마스크가 없다고 하면 쟁이고 있던 물량도 직접 나눠준다. 마스크 대란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친구는 “다 같이 힘든 상황이잖아”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지인도 훈훈한 소식을 전했다. 인근 건물주들이 점포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낮추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이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상가 세입자들을 조금이라도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대구 서문시장 등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료’ 운동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건물주들이 알음알음 늘고 있는 것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력을 잃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도시가 한순간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모습을 그렸다. 코로나19 확산이 급속도로 진행된 최근 한국 사회와 꼭 닮아 있다. 소설에서 정부는 시민 보호라는 미명으로 눈먼 자들을 격리하지만 수용소에는 무질서와 약탈, 폭력, 강간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가 난무한다.

다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극한 상황에서도 눈먼 자들을 돕고 의지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작가 조제 사라마구는 “이들에게 있어서 연대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성희 경제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