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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가수 겸 배우 하리수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2000년 9월 게이인 배우 홍석천이 ‘커밍아웃’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한국인들에게 알린 지 대략 7개월 만이었다. 홍석천이 동성애라는 당시 사회의 금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면,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등장은 ‘타고난 성(性)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리수는 한국사회의 선구자였다.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악담을 받기도 했지만 버텨냈다. 이듬해 12월에는 법원에서 호적 정정 및 개명 허가를 받았다. 법적인 성을 바꾸는 일은 같은 해 7월에도 있었지만, 유명인의 경우는 그 파장이 훨씬 컸다. 하리수의 주민번호 7번째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고, 본명이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바뀐 것은 이 사회의 변화를 상징했다. 당시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성전환자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 헌법 이념에 따라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2020년 1월은 19년 전 하리수의 등장 때만큼이나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한국사회에서 많이 회자된 시기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던 변희수 전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결국 강제전역 판정을 받았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까지 마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19년이란 세월만큼 한국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진보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듯하다. 변 전 하사와 숙명여대의 일이 알려진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 복무적합 여부’와 ‘여대 입학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남성 부사관으로 입대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전환복무 요구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이 전례 없는 일이기에 절차적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관련 규정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규정을 따질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까지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군과 숙명여대의 일부 구성원들이 이들을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면서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진정한 여성’이란 개념 자체는 남성 위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정의였다. 생물학적으로 ‘지정’받은 성별과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시스젠더(Cisgender) 여성만 진짜 여성이란 주장은 21세기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지금에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 페미니즘의 고전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팔루디는 76세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아버지를 만난 뒤 <다크룸>이란 책을 썼다. 팔루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다크룸>)을 쓰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경험들이 합쳐져서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정체성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인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라며 “사실은 둘 다이다. 우리는 물려받은 것을 재구성하는 순간에도 물려받은 것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지금은 2020년이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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