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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19대 대선 기간 중 있었던 일이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문 후보는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홍 후보는 “그래서 동성애에 반대하십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문 후보는 “반대하지요”라고 확답했다.
당시는 대한민국 국군이 위헌 요소가 다분한 군형법 92조 6항에 따라 그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A대위를 구속 수감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은 국가에 의한 부당한 억압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에 대한 차별 및 국가폭력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대선 이후 A대위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군대 위문 공연에는 소위 ‘2부’라는 것이 있다. 이성애자 남성들을 위한 성적 코드와 장치로 가득 찬 시간이다. 그리고 이는 군인의 사기진작을 위한 필수요소라고들 한다. 여기에는 남성은 무조건 이성애자이며, 그 성욕은 본능이자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이성애자들의 성욕은 그렇게도 중요해서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헐벗은 이미지’를 제공하는 반면 동성애는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왜일까?
그 이면에는 동성애 혐오만큼이나 여성혐오가 놓여있다. “군력을 약화시킨다”는 말은 남성 간의 성관계가 남성을 ‘여성화시킨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향한 성욕은 남성성의 상징이고, 남성을 향한 성욕은 범죄가 되는 상황. 이는 이성애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착종이 아니고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여군에 대한 남군의 성폭력이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사문화되었던 군형법 92조 6항이 갑자기 법적 효력을 발동하게 된 맥락 역시 살펴봐야 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성보수화 역시 진행되었던 것과 그 궤를 함께한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와중에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동성애에 대한 공격은 성보수화를 견인했다.
우경화와 성적 보수화가 함께 가는 이유는 명백하다. 대한민국에서 성(聖)스러운 존재인 ‘국민’이란 기실 성(性)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性)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국가’를 오염시키는 ‘불온하고 더러운 것’은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기득권의 성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그리하여 이성애자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성(聖)스러운 국민이, 동성애자 군인은 군력을 위협하는 성(性)스러운 범죄자가 된다. (올해 출간된 <‘성’스러운 국민>이라는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렇게 홍준표 후보 역시 문재인 후보에게 구닥다리 ‘빨갱이’ 프레임을 덧씌우고자 할 때 “동성애 찬성 여부”로 사상검증을 시도할 수 있었다. 2년 전 한 공영방송 이사가 입 밖으로 냈던 “동성애는 더러운 좌파”라는 말은 홍 후보의 질문과 공명한다.
성적 영역 이외의 부분에서 진행되었던 ‘우클릭’은 이제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잠시 주춤해졌다. 그리고 일종의 상징적인 보루로 성(性)적/성(聖)적인 영역을 둘러싼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싸움에서 결국 누가 이길지는 자명하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시민권을 얻고 평등을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2017년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제18회 퀴어 문화축제가 열린다. 보수 기독교는 이미 ‘음란과 타락’을 내세우며 이에 대한 마타도어를 시작했다. ‘음란함’이란 누가 규정하고, 언제 꺼내들며, 어떻게 사용하는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견고한 구습을 타파하고 평등과 자유를 불러오는 것이 음란함이라면, 이번 주말, 광장에서 마음껏 음란하라.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진보임을, 닥쳐온 지옥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임을 만끽하실 수 있을 것이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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