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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해결하러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으며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려는 찰나, 옆 테이블에서 생경한 단어가 들려왔다. “걔는 진짜 낄끼빠빠 못하지 않냐?”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낄끼빠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끼리끼리”도 아니었고 “뛰뛰빵빵”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옆 테이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메모장에 “낄끼빠빠?”라고 적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테이블에서는 ‘헬조선’처럼 친숙한 단어부터 ‘번달번줌’이나 ‘어덕행덕’처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통 뜻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조어가 온라인상에서만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육성으로 들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낄끼빠빠와 번달번줌, 그리고 어덕행덕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이었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동시에 과도한 개입을 ‘나대는 것’으로 바라보는 현세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단어인 셈이다. 번달번줌은 “번호 달라고 하면 번호 줌?”이라는 뜻이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무턱대고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걸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 저 신조어에 담겨 있었다. ‘적극적인 소심함’ 같은 형용모순 말이다. 어덕행덕은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뜻이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어덕행덕은 신조어가 또 다른 신조어로 변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덕질에 대한 시선이 ‘외골수’에서 ‘개인의 분명한 기호나 취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친김에 온라인상에서 ‘신조어 능력 평가’라는 것을 해보았다. 총 스무 개의 신조어가 제시되었는데 내가 아는 거라곤 고작 여섯 개뿐이었다. 개중 어떤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뜻풀이를 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도 여러 개였다.
별걸 다 줄여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기성세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대개 신조어들은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카페나 길거리에서 사용된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살지 않으면 도통 알 수 없는 말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말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노트를 펴고 그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어들을 적다가 이를 단순히 새롭게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말이나 은어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조어의 대부분은 줄임말이다. 이를 언어의 간편한 유통 차원으로 축소 해석해서는 안된다. 신조어를 즐겨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성세대와의 분리를 꿈꾸는 것이다. 개저씨들은 스스로가 개저씨인 것을 모른다.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을 빗댄 ‘달관세대’라는 말을 기성세대는 앞날 걱정은 하지 않고 흥청망청하는 세대라는 말로 해석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생겨난 말들은 확실히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신조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어서 낄낄거리고 재치 있어서 무릎을 탁 치게 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뜨끔하다. 왜 이런 조어가 생겨났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신조어의 뜻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신조어를 정리하는 내내 유독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도 금턴, 재포자, 청년실신 같은 단어들이었다. “금(金)처럼 소중한 인턴”을 뜻하는 ‘금턴’이라는 신조어는 정규직 전환 여부를 떠나 일자리를 얻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준다.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재포자’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의 ‘청년실신’은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지르는 비명 같았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줄여서 만든 “복세편살”이라는 단어는 자조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신조어는 새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새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새로운 직업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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