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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벌이가 시원찮게 되면서 하고 싶었던 일조차 희미해져 버린 당신과 나, 이런 우리도 해마다 2~3주 정도 유럽이나 미주, 인도나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우리는 은퇴한 뒤에도 경제적인 풍요와는 거리가 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가 은퇴해 시간이 많아지면 해마다 프로방스나 알프스 인근의 고풍스럽고 한가한 마을, 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의 농장 등지를 돌아가며 2~3개월쯤 살아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우리의 거주 공간, 음악 소리를 제대로 내기도 어려우니 목공 같은 취미 생활은 엄두도 못 낸다. 전기톱이나 콤프레셔 같은 공구의 소음이 시작되는 순간 이웃이나 아파트 관리인이 달려와 문을 두들겨댈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목공삼매에 빠지며 뭔가를 창조하는 재미가 가능하기나 할까?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대안연구 공동체의 강좌 모습(출처 :경향DB)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보름 동안, 때아닌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돈이나 시간이 풍족해서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 집에 달포간 머물렀던, 은퇴한 해외 교민 부부와 메일을 주고받다 갑자기 마음을 내서 어렵게 돈을 마련하고 시간을 낸 것이다. 이들이 좋아했던 것들로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 그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지만 약간의 불안함도 없진 않았다. 그 집에 머물다 불편해지면 상업 숙소로 옮길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선발로 뛰어나오다시피 우리를 반기는 이들을 보며, 매일 밤마다 잔치를 벌이듯 준비한 식사와 담소를 즐기며, 숙소를 옮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머문 집이 내 집 못지않게 편안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우리를 아는 사람만이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에 맞춰 음악회 티켓들이 마련돼 있었고 내 관심사에 따라 녹색, 또는 대안운동 현장답사가 이루어졌다. 남녀노소가 어울려 춤추는 이색 클럽을 찾고 이국적인 맛집을 찾는 것도 그곳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자동차를 빌려 우리 부부가 며칠 다른 지방을 여행하다 귀환했을 땐 몇 년 헤어진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했다.
지난해 시작된 이들과의 인연은 이들이 우리 집에 얼마간 머문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부모나 형제의 집에 머무는 것보다 편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그렇다면 돈 아닌 그 어떤 것, 정성이나 신뢰, 또는 함께하기나 나눔 같은 걸 우리도 배운 것이 아닐까.
은퇴 후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이 꿈꾸는 이국에서 몇 달 살 수 있다는 건 이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두세 달 정도 집을 교환하면 된다는 것이다. 구미에서는 이미 퍼져 있다는 이른바 하우스 스위치, 집의 소유 못지않게 사용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럽과 미주 일대에 집을 가진 사람과 서울 사람이 서로 일정을 맞춰 2~3개월 집을 교환하면 서울 사람은 유럽이나 미주에, 유럽이나 미주 사람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살 수 있다. 생활비는 큰 차이가 없으니 비행기 삯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지역과 일정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의 교민 사회에서 오랜 세월, 사회운동을 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다져온 이 분들은 말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실천 가능한 대안들 아닌가. 나는 유럽 참여자를 모을 테니 대안연구공동체에서도 그런 교환이 가능한 사람을 모아 보시라.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출처 :경향DB)
▲ 하우스 스위치, 어울림 공방…
더불어 사용하고 나누면
고단한 삶도 아름답게 빛난다
소유보다는 사용, 혼자보다는 함께하기를 즐기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뿐 아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어울려 공방을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직업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이 서울에서 개인 공방을 만들기는 어렵다. 값비싼 공구도 그렇지만, 공방의 보증금과 월세는 더욱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누면 간단해진다. 특히 솜씨와 능력이 빼어난 사람이 있다면 공동체 구성원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목공예교실 운영도 가능해진다. 나눔을 사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상품화가 가능한 작품을 만든다면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함께하면 가능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송년회 시즌이 시작됐다. 웬만한 이들의 수첩에는 이미 연말까지 송년회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올해도 송년회에서 만난 이들은 온갖 건배사를 하며 술잔을 부딪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며 그들만의 눈빛을 교환하기도 할 것이다. 좋다. 하지만 기왕 모이는 것, 우리의 삶과 삶터를 보다 건강하고 풍성하게 하는 뭔가를 함께 꿈꾸고 계획할 수는 없을까.
더불어 힘을 모으거나, 나누면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다. 마포 일원에서 활발한 여러 공동체들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낫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계속되는 힘은 함께하는 이를 소중하게 여기며 소유보다는 사용과 나눔에 주목하는 것에 있다. 재능을 나누고, 아이 교육을 함께하며, 집도 나눈다. 이는 우리 인문학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수단일 뿐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갈수록 척박하고 고단해지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인문학 공동체를 꾸리며 긴 여행이나 공방처럼 엉뚱한 것을 꿈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누구든 오시라, 더불어 공부하며 꿈꿀 수 있는 온갖 재미난 것들을 지금, 여기서 이루어보지 않겠는가.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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