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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지럽다…. 얼마 전 공동체를 찾았던 한 대학 교수가 했던 말이다. 마침 에릭 홉스봄을 읽던 이들이 노각으로 오이 냉채를 만들어 나누고 있었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한 방에서는 이반 일리치 읽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방에서는 글쓰기 스터디가 합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목공 삼매에 빠져 있었던가. 세미나실 하나를 좌식으로 바꾸고 낮은 책상을 만들던 참이었다.
그가 보기에 어지러운 건 공동체의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강좌와 세미나, 스터디는 더 어수선했다. 그에 따르면 논어, 맹자 강독과 그 성격이 상반되는 노장 및 불교 경전 강독의 병행은 잡화점식 시간표의 전형이었다. 불교 경전 읽기 모임과 희랍어 성서 읽기 모임이 동시에 개설돼 있는 것도 그랬다. 그는 몰아세우듯 물었다. 니체에서 라캉, 푸코, 들뢰즈, 지젝, 벤야민, 부르디외처럼 인기 있는 강좌나 세미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 사람조차 모으기 어려운 칸트 강좌는 왜 개설하는가. 그리스 고전 철학을 읽는 강좌며 세미나가 3개나 동시에 진행 중인 것도 비효율적이다. 영화 감상, 책 읽고 글쓰기, 시 창작, 영문 단편 읽기, 미술사, 건축, 사진 강좌와 누드 크로키가 포함된 드로잉 등은 하나로 묶기조차 어려운 이질적인 장르 아닌가. 여기에다 좌식 방이 완성돼 참선, 명상, 요가 모임까지 생기면 공동체의 시간표는 더 어지러워질 것이다. 작심한 듯 충고를 쏟아놓던 그 학자는 결론을 맺었다. 시간표에 이곳만의 정향이랄까, 특성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인문학 공동체는 명품점을 지향해야 살아남는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나열하는 백화점이나 지자체의 문화센터와는 달라야 한다.
2. 그의 지적은 맞다. 인문학 공동체가 백화점 문화센터와 다른 명품점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현실적이다. 실제로 잘 알려진 제도권 밖 인문학 공동체의 대다수는 강의나 세미나 제목만 일별해도 그 지향이 드러난다. 대학 밖에서 철학적인 사유의 저변 확대를 꾀해 온 ‘철학아카데미’, 학문간 가로지르기를 하며 코뮨주의적 삶을 모색해 온 ‘수유 너머’ 계열의 여러 모임들, 진보주의와 자본주의 비판을 내세운 ‘네트워크 새움’과 ‘연구모임 아래’, 이름에서 공동체의 성격이 뚜렷이 드러나는 ‘다중지성의 정원’, 책과 차(茶), 그리고 우정이 있는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길담서원’, 역사나 문학 출판사가 출판 활동의 연장으로 설립한 ‘푸른역사 아카데미’, ‘문지 사이’, ‘인문까페 창비’ 등.
우리 공동체도 뜻한 바가 없진 않았다. 주부, 직장인, 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의 인문학 공부 욕구를 수렴하면서 제도권에서 외면하거나 못하는 것들의 대안 만들기.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자본 앞에 무릎을 꿇고 대학이 돈벌이 기업화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 공동체의 지향은 어렵지 않게 도출됐다. 여기에 대학 안팎을 막론하고 수입 이론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외국 이론을 우리식으로 소화해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였다.
일러스트 _ 김상민(출처 :경향DB)
문제는 칡넝쿨처럼 뻗어가는 공부 모임의 속성이었다. 니체, 들뢰즈, 지젝 등을 제대로 공부하려니 그리스 철학이 필요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다 보니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처럼 전통과 현대를 잇는 연결점을 찾아야 했다. 서양 철학만 공부하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동양 철학이 필요했고, 논어와 맹자를 공부하니 노장과 불교 사상에도 눈길이 갔다. 불교 경전을 읽으면서 종교 간의 대화를 생각하니 기독교 성서를 희랍어로 읽는 모임도 생겨났다. 문학, 영화, 건축, 사진, 드로잉 강좌, 세미나를 만든 건 인문학을 공부하며 연습한 사유들을 문화예술에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였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하는 몸을 만들려니 명상이나 요가가 가능한 좌식 방도 필요했다.
3. 사실 공동체의 강좌와 세미나를 지향성이라는 실에 하나로 꿰려는 시도는 근대의 기획에 속한다. 인문학에서 서로 차이나는 것들을 한 지평 위에 개념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것이야말로 근대 기획의 전형 아닌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지향성은 제국주의를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가지다. 유례없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앞세워 우주 만물을 인간 앞에 대상으로 나란히 세우며 이를 인간의 식민지로 만든 것도 그 결과다. 그리고 이 인간 중심, 강자 중심 기획이 지구화한 참상은 작금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다.
부끄러운 아버지….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하게 살면서 공동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40대 중반 남성의 공부 이유는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강자 중심 사회에서 자신이 차지한 힘 있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학연이나 혈연, 지연, 계급,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사코 소유를 확대하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의 전승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열살, 스무살 어린 동료들과 어울려 오이 냉채를 먹어가며 희희낙락 공부에 열심이다. 공동체가 어지럽듯 그도 어수선해 보인다. 평생 안정된 밥벌이를 움켜쥔 대학 교수의 눈으로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인류사에서 가치 있는 것이 창조된 곳은 등 따습고 배부른 아랫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 가치, 법칙이 생성된 곳은 언제나 바람 차고 거친 산야였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이 떠난 모험의 길, 낯선 것들이 어지럽게 마주치며 공명하는 카오스에서였다. 그러니 당연하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대안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공부가 어지러운 것도.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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