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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생계에 바쁜 직장인이 새로운 외국어를 익힐 수 있을까. 공부를 업으로 하는 학자를 제외하면 사례는 매우 드물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건 고사하고 학창 시절, 어렵게 공부한 영어를 잊지 않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스트레스와 음주, 흡연 등으로 뇌세포조차 날로 퇴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50대인 나를 포함한 30~60대 직장인, 주부, 그리고 은퇴자들이 이번 주부터 프랑스어 익히기에 나선다. 참여자 대부분은 프랑스어 발음은커녕, 알파벳도 모른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프랑스어를 위해 떼어내기로 약속한 시간은 일주일에 최대 10시간, 자습만 치면 하루 평균 1시간 이내다. 주 1회 모임에 기간은 6개월, 프랑스어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를 제법 하는 것이 목표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회의적이다. 중·고교와 대학 10년은 물론이고, 그 뒤에도 공부해 온 영어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프랑스어를 익히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믿는 게 없지 않다. 암송이다.
여기, <무지한 스승>이란 책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교육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1818년 네덜란드로 망명한 조제프 자코토란 프랑스 학자가 루뱅 대학의 강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선생은 네덜란드어를,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자코토는 때마침 출간된 <텔레마코스의 모험> 프랑스-네덜란드어 대역판을 통역을 통해 소개하면서 이 책 제1장의 반을 쉼 없이 되풀이하고(암송하고), 그 뒷부분부터는 대역을 참고해 뜻만 익히라고 주문했다. 몇 주 뒤 그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읽은 내용 전부를 프랑스어로 쓰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문법 설명 한번 듣지 않은 학생들의 작문은 고급 프랑스어로, 완벽에 가까웠다.
물론 네덜란드 학생이 같은 언어권인 프랑스어를 익힌 것과 우리가 프랑스어를 익히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자코토의 사례는 공부와 교육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외국어 공부가 그렇다. 실제로 외국어로 된 책을 통째로 외웠더니 외국어가 들리고 말이 나오더라는 체험담은 많다. 문제는 내가 그걸 할 수 있느냐다.
달달 외우면 된다는 이야기야 많이 들었지만 누구나 그런 일이 가능한 수재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시간도 부족하다.
얼마 전부터 공동체에 ‘명문 암송 결사’란 이름의 모임을 만들고 재미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모임의 목표는 우리말과 한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희랍어 등으로 된 명문장, 명시, 명대사, 명연설 등을 큰 소리로 암송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의 희망이야 글쓰기, 말하기, 외국어 공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겠지만 내 목표는 단순했다. 늘 오락가락하는 명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어 즐기며 뇌세포의 퇴화 속도나 늦춰 보자는 것이었다.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처음에는 짧은 한시 2수를 암송하는 것에 그쳤다. 참여자 모두 암송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모임을 거듭할수록 가속이 붙었고, 이젠 모일 때마다 처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암송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암송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암송이야말로 학습뿐 아니라 논리와 창의, 상상의 보고라는 것이다. 암송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이 셌다. 문법 설명 한번 듣지 않은 학생들이 암송으로, 문법을 유추하며 고급 프랑스어 작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무엇보다 ‘함께하는’ 암송은 재미가 있었다.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돼 우수수 중도 탈락하는 제2외국어 익히기에 암송을 활용하자고 바람을 잡은 이유다.
사실 동서양의 인문학은 모두 암송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천자문을 뗐다는 것은 천자문을 외울 수 있는 것을 뜻했고, 사서삼경을 읽었다는 것은 사서삼경을 암송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는 불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베다와 성경, 호메로스의 시를 포함한 인류의 위대한 고전들은 모두 암송으로 구전돼 온 것들이다. 인문학이란 것도 알고 보면 암송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진 뒤 나의 상상과 철학이 보태어져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한 것들이다. 하지만 암송은 주입식 교육의 원흉으로 지목받은 것에 이어 터치 한 번으로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이 되면서 자취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노래방에 가지 않으면 노래 한곡 부르지 못하게 되었을까.
하기야 공동체의 암송 모임에도 부작용이 없진 않았다. 이백이나 도연명의 시를 합송하다 흥을 못 이겨 가진 과도한 술자리가 그것이다. 독일어, 프랑스어 암송도 부작용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프랑스어 명문장들을 꽤 암송해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뭐, 그래도 좋다. 하루 1시간 정도의 노력으로, 샹송 몇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고,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 카뮈, 사르트르 같은 대가들의 명문장과 명대사, 명연설문 들을 프랑스어로 줄줄 외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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