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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통령은 힘이 세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의 핵심으로 인문학 진흥을 강조한 것이 불과 몇 달 전. 벌써 관련 예산까지 확보된 모양이다. 예산 집행을 앞둔 교육, 문화 부처와 산하기관들의 움직임이 변두리 인문학 공동체에서도 감지된다. 시민들과 어울려 인문학 공동체를 꾸리는 나로서는 이른바 인문학 열풍에 더해 운 좋으면 수혜자가 될지 모를 예산까지 준비되고 있는 셈이다.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인문학 진흥이 싫어서가 아니다. 뿌리와 줄기는 그대로 두고 곁가지만 건드리는 것에 마음이 쓰여서다. 알다시피 인문학의 본류는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지자체나 대학 밖 인문학 단체의 일회성 시민 강좌가 아니다. 중요한 건 대학이다. 대학 인문학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양 강좌만 잘 이루어져도 인문학 진흥이라는 국책 과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된다. 다행히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가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개 대학에서 교양 과목은 수강생 20명이 안되면 폐강된다. 70~80명은 기본이고 100~200명을 모아놓고 강연식으로 이루어지는 강의도 많다. 이런 곳에서 인문학에 필수적인 글쓰기며 토론 같은 것들이 가능할 리 없다. 게다가 한 학기 16주 강의에서 개강과 종강,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축제 등을 빼면 강의가 가능한 일수는 10주를 겨우 넘는다. 교양 과목 공부에 필요한 폭넓은 책읽기, 글쓰기는 고사하고 교재 한 권 달랑 들고 다니다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일부에만 손때를 묻힌 채 학기를 마치는 것이다.
그 일차 원인은 대학의 지상 과제가 되다시피 한 경쟁력 때문이다. 대학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학생들의 취업률과 교수들의 논문이다. 그런데 교양 교육은 여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과 교수 모두 전례 없이 바쁜데도 대학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대학 인문학 공동화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퇴행으로도 연결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요컨대 대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이 자본에 완전히 복속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 일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덕분에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도 할 일이 생겼으니 이 사태를 고마워해야 할까. 대안연구공동체가 최근 본격 실험을 시작한 ‘인문학 교실’은 대학이 안 하거나 못하는 것들을 우리가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철학을 기둥으로 하는 이 교실에서 강의 못지않게 중시하는 것이 있다. 인문학의 생명이라 할 읽고 쓰고 말하기, 즉 토론이다. 여기서 읽을 책은 철학, 문학, 역사와 문화 예술 등 이른바 전통 인문학의 영역뿐만 아니다.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을 포함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포괄한다. 그동안 공동체가 효율적인 제2외국어 학습을 위해 암송을 비롯한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어든, 프랑스어든, 독일어든, 한문이든 몇 달 배웠으면 해당 언어로 책은 읽게 하자는 것이다.
청년 인문학캠프(출처 :경향DB)
그러고 보니 인문학의 개념 자체에도 시빗거리가 없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파이데이아’에 연원을 두고, 라틴어 ‘후마니타스’로 번역된 인문학은 본래 문학, 역사, 철학을 핵으로 하는 학문의 갈래가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를 소거한 뒤, 남은 분야가 인문학인 것도 아니다. 시민 교양 교육의 뜻을 지닌 파이데이아는 종합적,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의 모든 주제를 포함한다. 따라서 수학, 물리학, 생물학도 종합적, 철학적으로 공부할 때는 인문학에 속하나 문학, 역사, 철학도 전문학자의 방식으로 탐구할 때는 인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문학의 목표도 문학, 역사, 철학 전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학문 분야를 토론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 전문가의 주장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철학이다. 학문과 삶의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면서 삶과 사회에 방향을 제시할 지혜를 닦는 공부가 철학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보루로 파이데이아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이후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전문가의 야만’을 완화하고 치유할 유력한 처방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인문학이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인문학의 효용은 인간다운 삶과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한 끝없는 도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기만과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힘이 센 대통령이 꿈꾸는 인문학이 여기까지도 생각하는 것일까.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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