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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선생님의 <다윗과 골리앗>이 단숨에 자기관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더군요.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책에 붙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무색하게 이 책은 처음부터 돈으로 밀어붙이는 강력한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한국에서는 출간된 후 18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간도서는 정가의 10% 이내의 할인과 10% 이내의 경품(총 할인율 19%)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정가가 1만7000원인 <다윗과 골리앗>은 론칭기간에 5000원짜리 할인쿠폰이 대대적으로 뿌려지는 바람에 독자들은 실제로 51.6%인 8770원에 책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펴낸 21세기북스는 <넛지>의 저자인 캐시 선스타인의 신간 <심플러>도 같은 방식의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독자는 1만9800원의 책을 51.4% 할인된 9820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요. 한국에서는 실용서로 등록하면 얼마든지 할인해도 불법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사재기가 만연해 늘 시끄러우니 이런 편법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게지요. 저는 이런 행위를 ‘유사 사재기’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는 2002년에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허용되는 저작물의 범위에 관한 고시’라는 것을 만들어 2005년부터는 취미여가활동관련 도서, 성인용 자격증수험서 등 실용서를, 2007년부터는 초등학생용 참고서를 도서정가제 적용 품목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이후에 가격경쟁범위를 점차 늘릴 계획이었지만 출판·서적계의 강력한 반발로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출처: 경향DB)

공정위는 “책값 과열경쟁이 학술·문예서적 등 고급서적 출간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하기 위해 이 같은 고시를 마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용서는 창의성이 부족한 저급한 서적이니까 무한할인이 벌어져도 괜찮다는 뜻이겠지요. 아니 출간되지 않아도 무방한 책이라고 봤다면 심한 말이 될까요?

선생님의 책들은 모두 창의성이 빛나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펴낸 21세기북스는 실용서로 분류했습니다. 엄연한 ‘학술·문예서적’을 실용서로 분류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 책을 ‘쓰레기’ 취급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이런 마케팅 기술만은 정말 창의적이라고 칭찬해야 할까요?

이런 빛나는 ‘성공사례’가 있으니 벌써 책을 실용서로 등록하는 사례가 크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인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한국경제신문사)는 사재기 혐의로 고발된 <관계의 힘> 양장 미니북을 증정할 뿐만 아니라 CU(편의점) 3000원 모바일상품권(사전 주문예약할 때에는 5000원이었습니다), 미니 탁상달력, 2000원 즉시 할인쿠폰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기관리 1위인 <다윗과 골리앗>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 모든 도서의 실용서화가 이뤄질 추세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이제 책을 사면 공짜에다 왕창 선물을 안겨주는 일이 자주 등장할 것이니까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제야 실태조사에 나서는 한편 실용서와 교양서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미 한국 출판시장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책을 만든다는 문화인의 자부심이나 출판 윤리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오로지 파격할인이나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급급합니다. 이런 행위도 유명저자의 책이 아니면 통하지 않으니 과도한 선인세로 유명저자의 책을 잡는 데도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최재천 의원의 대표 발의)이 빨리 통과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국무총리실도 국가정책개선과제로 2014년 상반기까지 도서정가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22일, 출판·서점, 독서·소비자단체 등이 참석하는 모임을 주재하는 등 직접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니 어디 한번 기대해보겠습니다. 사실 한국 출판은 발등에 더 큰 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마존은 염동훈 전 구글코리아 대표를 영입하면서 국내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영미권 시장을 압도적으로 휩쓴 아마존은 일본에 진출한 지 1년 만에 일본 전자책 단말기 시장의 38.3%를 장악하면서 곧바로 일본 내 최대 사업자가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가 많이 거론됩니다. 도서 할인율을 5%로 엄격히 제한하는 특별법(랑법)이 있는 프랑스는 아마존이 진출하면서 서점들이 위협을 느끼자 정부 차원에서 서점 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작년 10월3일 프랑스 의회는 소형 서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마존 같은 대형 온라인서점이 5% 할인과 별도로 무료배송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독일의 출판사(베텔스만 등)와 서점(후겐두벨, 탈리아 등)과 통신사(도이치텔레콤) 등은 아마존에 대응하기 위한 전자책 컨소시엄 ‘토리노’를 만들어 전용 디바이스를 출시한다고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 선생님, 당신은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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