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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간 동양경제’ 2011년 송년호는 ‘2012년 대예측’을 특집으로 꾸리고 113가지 테마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유럽의 벼랑 끝 위기’ ‘블록 경제화’ ‘커지는 격차’ ‘정치 원년’ ‘전력 격진(激震)’ 등 다섯 가지를 주요 테마로 설정했는데, 그중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 사진을 배경으로 제시된 세 번째 테마 기사의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미국사회 3명 중 1명은 빈곤층으로.”


저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중산층의 나라 미국이 미연방 국세(國勢)조사국이 밝힌 신빈곤 기준에 따르면 3명 중 1명이 빈곤층이거나 빈곤예비군이 된다는 지적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사에는 스탠퍼드대학교의 보고서를 인용해 “1970년대에 미국의 65%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2007년도에는 20% 이하로 격감”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이 각각 2배로 확대”되었다는 사실도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는 오늘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책입니다.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의 출현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스티글리츠는 “1%에 속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움켜쥔 채 승승장구하면서 나머지 99%는 불안과 걱정만을 안겨주었다”고 미국사회를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신명호 소장의 <빈곤을 보는 눈>(개마고원)은 “한국 사회의 가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3명 중 1명은 빈곤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 평균 생활비 1.25달러라는 유엔의 절대빈곤 기준을 대입하면 우리나라에서 빈곤층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 최저한의 삶이란, 그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전제를 대입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OECD의 통계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달러를 겨우 넘긴 우리나라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15%로,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미국(4만9600달러)의 17.3%와 일본(4만6972달러)의 15.7%보다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 어려워지고 청년 취업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 빈곤의 대물림 등이 굳어지고 있어 이제는 우리도 “빈곤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빈곤은 개인적 차원으로만 설명해서는 곤란합니다. 가난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의 한 극단적인 양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 불평등한 계급적 관계가 늘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재산·권력·학벌·연줄·건강 등)을 많이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주류와 소수자 그룹 사이에 언제나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법 아닌가요.


'빈곤을 철폐하라'(출처 :경향DB)


빈곤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입니다. 198만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와 전세대란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렌트푸어’ 등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빈곤층에 포함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푸어(poor)’층을 빈곤층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빈곤층이 아닐까요.


빈곤을 낳는 가장 큰 연원은 부족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물론 고용의 질도 중요하겠지요.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32~35% 수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단연 1위입니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과 계층 간 근로소득격차도 세계 1위인 데다 자살률, 상대빈곤율, 불평등지수 등과 함께 고용불안정에서도 부끄러운 최상위권 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일자리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25% 수준을 오르내리지만 그중 90% 이상이 영세자영업자라 열에 아홉은 망해가기 일쑤입니다.


신 소장은 “노동자를 공생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는 대자본의 태도와 기업문화는 늘 그들 편에만 섰던 정치권력이 방조하고 조장한 결과물”이며 “개발독재정권은 과거의 가난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지만, 오늘날 새로운 가난이 생겨나는 원인을 제공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약직 고용, 저임금 및 성과급 체제, 상시적 구조조정 등을 활용하는 한편 후생 복리 같은 것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낮은 임금을 주다가 아무 때고 해고할 수 있는 ‘노동 유연화’ 전략에 간혹 노동조합이 맞서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대응”해왔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과학기술의 변화가 미국의 불평등과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 덕에 G1 미국이 3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사회안전망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철도파업이나 전교조를 대하는 작금의 태도를 보면 개발독재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신 소장은 빈곤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역설합니다. 바야흐로 ‘신빈곤층의 시대’, 이제 새로운 대처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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