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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를 맞이한 작가 서영은은 <꽃들은 어디로 갔나>에서 1995년에 작고한 30년 연상의 작가 김동리와의 사랑을 써늘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작가로서 삶의 진실, 인간성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실이라는 작가는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하라는 연인의 격려에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재미교포인 이서희는 자전적 에세이 <관능적인 삶>에서 자기 삶의 관능과 욕망을 농밀하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아 한 작가로부터 ‘한국의 사강’이라는 호칭까지 얻었습니다. 작가가 만약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성장 과정에서의 성 경험까지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허구와 실제가 혼돈되어 있는 소설로 더 적나라한 글을 쓰고 싶다는 소회를 털어놓았습니다.


자전소설과 자전적인 이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동족끼리의 전쟁, 장기 군사독재를 겪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겪을 수 없는 치욕을 무수히 겪었습니다. 5공화국 신군부에 의해 치욕의 고문을 당한 경험을 적나라하게 그린 한수산의 <용서를 위하여>를 다시 읽어보면서 저는 우리가 모르는 절명(絶命)이 얼마나 많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했습니다. 한수산과 소설책 출간을 이유로 몇 번 만난 것 때문에 잡혀가 받은 고문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뜬 박정만 시인은 길을 가다가 멀쩡한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맞은 꼴이 아닐까요?


저는 어찌 됐든 한국의 고통스러운 현대사가 우리 문학의 수준을 무척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완서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 30년>을 쓰면서 지난 시절의 베스트셀러를 다시 읽어본 소감으로는 박완서는 삶 자체가 문학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사실감이 높았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작가의 중단편선집 <대범한 밥상>을 다시 읽어보니 특히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그린 단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한 어머니의 슬픔이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되어 절절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전적인 소설로 문명을 얻었습니다. 부랑노동자의 삶을 그린 <객지>, 베트남전쟁의 체험을 담은 <무기의 그늘>, 청년기의 성장과정을 그린 <개밥바라기별> 등의 황석영, ‘제주 4·3 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 <변방에 우짖는 새>의 현기영, <외딴 방>의 신경숙,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공지영, <새의 선물>의 은희경 등은 모두 자전적인 소설이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작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3년에 절필을 선언했던 박범신이 다시 돌아와 절필 이유를 소상히 밝힌 <흰소가 끄는 수레>와 아버지가 대중작가라고 비판받는 것이 괴로워 가출했던 아들이 돌아오자 함께 대화를 나누는 <제비나비의 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일 것입니다.


1974년 베스트셀러 황석영著 '객지' 책표지(출처 :경향DB)


2010년에 네 권으로 구성된 ‘자전소설 모음집’인 <자전소설>(강)이 나왔을 때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자전소설’을 일러 “오로지 소설가로만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어떤 순금의 시간이 발굴되는 현장”이라면서 “세상의 모든 소설은 자전소설”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작가에게 ‘현대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기도 했는데 작가는 작년에 펴낸 <안녕, 내 모든 것>에서도 ‘삼풍백화점’ 붕괴로 친구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질기게 작가의 관념을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전적인 이야기는 어떤가요? 1993년에 출간된 <역사 앞에서>는 사학자인 김성칠이 6·25 당시 불과 사흘 만에 함락된 서울의 인공 치하 3개월을 사실 그대로 정리한 일기입니다. 언론사마저 황망하게 도주하는 바람에 그 시기에는 일간신문마저 발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역사 앞에서>가 그 시기를 제대로 정리한 유일한 기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사적 기록이 공적인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에 이 일기를 읽고 나서 의미 있는 지식인의 일기를 찾아보니 ‘가람(이병기) 일기’가 유일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사학자 강만길은 팔순을 지척에 앞두고 펴낸 <역사가의 시간>에서 “세상의 상식적인 사람들 모두가 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의 다른 한쪽을 적이 아닌 동족으로 인식하면서 역사학의 전공자로서 정직한 일기를 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 최장기 군사독재 권력이 개인의 일기까지 뒤져 사적인 만남을 반국가 조직의 모임으로 몰아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시대를 기록해야 하는 역사가가 일기를 쓰는 것마저 자유롭지 않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작년에 출간된 <이오덕 일기>를 한 번 보십시오. 1962년부터 2003년에 걸쳐 작고하시기 이틀 전까지 쓰신 200자 원고지로 3만7986장이나 되는 분량의 일기에서 원고지로 6126장 분량만 추려내 다섯 권으로 펴냈답니다. 이 일기는 한국 현대 교육운동사로 읽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신의 슬픈 개인사를 눈이 내려 완전히 덮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미덕이 아닙니다. 되도록 솔직하게 온전히 드러낸 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열어가는 역사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자서전을 써 보시겠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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