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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더듬 촛불을 켠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예고 없는 정전이다
어둠이 환하게 식탁을 비춘다
동그랗게 사위가 살아나고
마주 앉은 얼굴 말그랗다
꾸역꾸역 낯선 침묵을 우겨 넣는다
달그락, 뚝배기 속 숟가락이 부딪는다
다각, 젓가락 두 짝이 키 맞춘다
아내는 무국 한 국자를 더 떠오고
주말드라마도 스포츠뉴스도 못 본 채
밥을 먹는다
말 없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
눈 큰 짐승 여물 먹는 소리 별반 다르지 않다
어둔 촛불 탓일까 끔벅끔벅 아내의 눈이
깊다
안성덕(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던 전기가 갑자기 끊어졌다. 겨우 촛불을 켜서 사방의 둘레에 둥근 빛을 둘렀다. 부부는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계속한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이 산뜻하고 맑게 드러나고, 어둠 속에서 그릇과 수저가 닿는 소리가 잔물결처럼 들려온다. 평소에 잊고 지냈던, 작고 각별하지 않았던 생활의 소리들이 도드라진다. 마치 평평한 면에 글자를 양각한 듯이.
가운데에 촛불을 켜 놓고, 이글루에 들어앉은 것처럼 둥근 빛 속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얼굴과 밥 먹는 소리를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하게 보고 듣는 밤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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