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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아래를 모르고

메아리처럼 비밀을 모르고

새처럼 현기증을 모르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강물에 던졌다

나는 너를 공중에 뿌렸다

 

앞에는 비, 곧 눈으로 바뀔 거야

뒤에는 눈, 곧 비로 바뀔 거야

 

앞과 뒤를 모르고

햇빛과 달빛을 모르고

내게로 오는 길을 모르는,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해

김행숙(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초혼(招魂)은 망자의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을 뜻하지만, 이 시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무척이나 보고 싶은 마음을 애틋하게 담았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위와 아래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메아리처럼 어디에라도 터놓고 떳떳하게 울려 퍼져 나가고, 생각과 열의가 높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강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으니 어디에라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와 나중이 따로 없이, 낮과 밤의 구분도 없이, 아무 데서나, 언제든 내게 온다. 모든 방향에서 전면적으로 내게 온다. 비의 시간이나 눈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삶과 죽음을 넘어서서 내게 온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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