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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이 꽉 차 있다. 동네 대형카페는 작년 여름을 끝으로 장사를 접은 지 열 달이 다 되어가고 그 공간은 여전히 ‘임대문의’를 붙여 놓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몰려갈 곳은 상가 안 이마트다. 갑작스레 치솟은 수은주에 ‘마트 피서’가 시작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시간부터 체험용 안마 의자엔 어르신들이 도열해 있고, 키즈 카페엔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놀고 있다. 나도 하릴없이 물건 구경을 하면서 더위를 좀 가라앉히는 중이다. 그러다 갑자기 물건 몇 개를 집어 들기도 하지만. 도시의 대형마트는 단순한 소비의 공간만이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주말에 가족들이 함께 카트를 끌면서 쇼핑을 하는 풍경은 희미해져가는 가족공동체의 끈을 확인하는 의례에 가깝다. 한여름 대형마트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냉방이 충분해서다. 눈과 비를 피하고 깨끗한 화장실과 위생 시설, 그리고 주차장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이렇게 덥고 습한 날에는 그 쾌적성이 경쟁력이다. 쾌적성의 일등공신인 에어컨은 그 자체가 열 덩어리인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냉방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날도 아마 그랬던 날이었을 것이다.

2011년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에서 일어난 질식사 사고 현장을 경찰과 이마트 관계자가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2일. 아파트 밀집지역인 이마트 탄현점에 사람이 몰려 냉방 효율이 떨어지자 에어컨 냉매를 주입하러 네 명의 노동자가 왔고, 그 자리에서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질식사. 그중 한 명은 고 황승원군이다. 사고 기사가 처음 났을 때 실명이 아닌 휴학 중인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나왔지만 그의 이름은 ‘황승원’이다.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1학년 휴학 중이라는 그의 프로필만큼이나 스물두 살의 인생도 짧았다. 황군은 학교 동기들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형편이 빠듯해 친구를 만나면 돈을 써야 하니 자신에게는 친구도 사치라고 어머니께 말했다던가. 그는 수업만 겨우 듣고 알바나 공부를 하러 가야 했으니 캠퍼스의 낭만은 한갓진 남의 얘기였을 것이다.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1학년을 다니다 등록금이 싸다는 시립대 경제학부에 다시 입학했지만 그의 짧은 대학생활 2년 동안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 1000만원이었다.

슬픈 미담처럼 황군의 사연이 오르락내리락했고 시립대 총학생회의 헌신과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배상에 미온적이던 이마트도 협상에 나서 뒤늦은 장례가 치러졌다. 그렇게 ‘이마트 사고’라 알려진 황군의 죽음이 올해 6주기다. 그 와중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또 한 명의 청년도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채 뜯지 못한 컵라면으로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던 그를 우리는 ‘김군’이라 부른다. 하청업체에 속해 있던 그들의 알바 노동은, 죽음조차 여러 번 하청되어 영면에 들어가는 길도 험난했다.

6년 전 여름, 꼬맹이 아이 둘을 데리고 이마트로 피서를 갔다가 아이들이 졸라대는 통에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순식간에 녹을 정도로 더워서 화들짝 다시 마트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자부심이 되고 싶었던 스물두 살 청년의 꿈도 구슬 아이스크림처럼 알알이 녹아 버린 그해 여름 2011년 7월.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을 만큼의 냉기를 유지하려던 그 처절한 노동을, 그리고 그(들)의 죽음과 혹서를 기억한다. 어엿한 성인인 그를 ‘황승원씨’가 아니라 ‘황승원군’이라고 고집스레 언명하는 이유는 어쩐지 그이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러운 어른이어야 하고 기성세대여야 할 것 같아서다. 고 황승원군을 기억하며 적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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